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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딩? 지옥은 모르겠고 빠따 좀 빌리자.”

 

 

여전히 자기 백팩만 끌어안고 멀뚱히 있는 고딩 같아 보이는 남자애 옆에 야구배트가 떨어져있었다. 열린 버스 뒷문으로 피를 뒤집어쓴 여자가 기괴한 소리를 내며 들어왔다. 한손에 배트를 든 재민이 손잡이 부분을 다잡기도 전에 여자가 달려들었다. 그대로 머리통을 내려친 재민이 헉 소리를 냈다. 저기요. 괜찮아요? 초면에 머리통 갈겨놓고 할 말은 아니었지만 아직 신음소리를 내며 고개를 쳐드는 여자도 정상은 아닌 것 같았다.

 

손 하나가 재민의 발목을 덥석 붙잡았다. 깜짝 놀란 재민이 붙잡힌 발을 이리저리로 움직였는데 손아귀 힘이 장난이 아니었다. 씨발 무슨 여자 힘이 이렇게... 결국 남은 발로 여자의 손을 콱 소리 나게 몇 번 밟은 재민이 욕짓거리를 내뱉었다. 발목을 놓친 여자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뚜둑. 관절 꺾이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재민이 배트 손잡이를 양손으로 다시 잡으며 침을 꿀꺽 삼켰다. 목까지 뚜둑뚜둑 꺾이는 소리가 나자 다시 피투성이인 여자 얼굴이 보였다.

 

 

“배트 그렇게 잡는 거 아닌데.”

 

“뭐?”

 

 

고딩이 뭐라 더 말을 하기도 전에 여자가 덤벼들었다. 재민이 있는 힘껏 배트를 휘둘렀지만 살짝 빗맞은 여자가 재민에게 달려들었다. 으악 하는 소리와 함께 재민이 버스 좌석으로 밀려 넘어졌다. 배트로 간신히 여자의 입을 틀어막고 버티는 재민이 신음했다. 씨발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인지 알 길은 없었으나 좆된거 하나만큼은 분명했다. 이렇게 어이없게 죽을 줄 알았으면 어제 회사가지 말 걸. 하는 바보 같은 후회를 하고 있는데, 눈앞의 저를 잡아먹으려하는 여자 얼굴 위로 회색후드가 푹 덮어졌다.

 

 

“배트 내놔요.”

 

 

방금까지 후드 집업을 입고 있던 고딩이었다. 본인이 입고 있던 후드로 여자 얼굴을 감싸 저 멀리 앞좌석 쪽까지 밀어 던진 고딩은 티비에서만 보던 야구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넋이 빠진 재민이 힘없이 배트를 건넸다. 배트를 잡은 고딩은 후- 하고 심호흡하며 배트로 자기 발끝을 두 번 톡톡 쳤다. 역시 티비에서 보던 그 무슨 일련의 의식 같은 모양새였다. 소리를 지르며 비틀거리던 여자의 얼굴에서 집업이 흘러내렸다. 배트 손잡이를 양손으로 다시 잡고 자세를 잡은 고딩이 여자가 달려오기를 기다렸다.

 

 

등번호 25번. 박지성. 재민이 자리에 반쯤 드러누운 자세로 볼 수밖에 없었던 고딩의 뒷모습이었다. 곧이어 그 등이 움직이고 깡-하는 경쾌한 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벌떡 몸을 일으킨 재민이 버스 바닥을 봤다. 대가리가 3분의 1정도 으깨진 여자가 이젠 더 이상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홈런...”

 

“...”

 

“...이었겠다.”

 

 

고딩은 무덤덤하게 말하며 재민의 옆통수를 봤다. 아직 야근의 여파로 머리가 잘 굴러가지 않는 재민이 멍하니 남자애를 쳐다봤다. 코를 한번 괜히 찡긋거린 고딩이 재민과 눈을 마주쳤다.

 

 

“뭐해요. 안 뛰어요?”

 

 

그게 조금 미친 박지성과의 첫 만남이었다.

 

 

 

 

 

-

 

 

 

 

버스 밖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그러니까 흔히들 말하는 좀비 같은 사람들이 넘쳐났다. 끼에엑 하는 이상한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 사람들을 모조리 먹어버리려는 이상한 생명체. 아니 생명체라 보기도 힘들었다. 온몸에 피칠갑을 하고 장기가 튀어나온 사람들도 있었으니. 멈춰버린 자동차 뒤에 숨죽이고 숨어있던 재민이 어디로 가야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옆에 같이 앉아있던 지성이 벌떡 일어났다. 화들짝 놀란 재민이 지성의 손목을 붙잡았다.

 

 

“어디 가.”

 

“집이요.”

 

“미쳤어? 지금 저것들 뚫고 혼자 가겠다고?”

 

“그럼 아저씨는 여기 평생 있게요?”

 

“아니 그건 아닌데, 뭐? 아저씨?”

 

“네, 아저씨.”

 

“야 형이라고 해, 재민이 형. 나 아직 아저씨 소리 들을 나이는 아니거든?”

 

“헐, 지금 그런 게 중요해요?”

 

 

야구 배트를 어깨에 걸친 지성이 물었다. 음...사실 어딘가로 도망쳐야 한다면 집으로 가는 게 맞는 일이긴 한데, 저보다 한참 어린 지성을 혼자 보내는 건 뭔가 재민의 어른으로써의 양심이 찔렸다. 자고로 미성년자는 보호해줘야 하는 거 아냐? 제 눈앞의 고딩은 두려울 거 하나 없어 보이는 게 문제였지만. 고개를 쭉 내밀고 좀비들이 느릿느릿 지나가는 걸 구경하는 지성의 얼굴은 곧 하품이라도 할 것 같은 표정이었다. 허- 하고 헛웃음이 나온 재민이 몸을 일으켜 지성의 옆에 섰다. 듣기 싫은 소리를 내며 걸어 다니는 좀비들은 의외로 재민과 지성에게 관심이 없었다.

 

 

“큰 소리 안내고 걸어가면 갈수 있을 것 같은데요?”

 

“넌 저것들 안 무섭냐.”

 

“뭐, 끽해야 죽는 것 밖에 더 하겠어요.”

 

 

버릇인지 지성이 대답하며 다시 코를 한번 찡긋했다. 가까이에서 보니 한없이 어린 얼굴이었다. 아까 좀비 대가리를 으깼다고는 상상 할 수조차 없는 순한 얼굴. 말랑하게 생긴 지성을 말없이 바라보던 재민이 입을 열었다. 너네 집 어딘데. 지성이 왜 묻느냐는 얼굴로 재민을 한참 쳐다봤다.

 

 

“제가 앤 줄 아세요?”

 

“고등학생이면 애지.”

 

“...버스 종점에 서월고 바로 앞인데, 뭐 데려다주기라도 하게요?”

 

 

종점 쪽이면 아직 좀 더 가야하는데. 재민이 곰곰이 생각을 이어나갔다. 재민의 집은 차도를 건너 한 블록 거리. 재민이 가진 것이라곤 노트북이 든 서류가방 하나. 무기라고 할 만한 것은 없었다. 일단 우리 집이 가까우니까 우리 집으로 가자, 가서 일단 좀 자고. 재민이 말했다. 네? 지성은 재민의 말에 반문했지만 더 이상 말을 덧붙이진 않았다. 그냥 재민을 빤히 바라 보길래 재민은 무슨 자기가 못할 말이라도 했나 생각했지만 피곤에 찌든 뇌는 더 이상 굴러가지가 않았다.

 

 

“우리집 저 바로 건너편 오피스텔이거든? 일단 저기까지만 가서.”

 

“...알겠어요.”

 

 

잠시 고민한 지성이 대답을 하자마자 뒷골목에서 폭발하는 굉음이 들렸다. 트럭 한 대가 사고가 났는지 시끄러운 클락션 소리가 골몰을 울리고 검은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좀비 같은 모습의 생명체들이 숨어있는 지성과 재민을 지나쳐 소음이 일어난 곳으로 어기적어기적 걸어가기 시작했다. 재민이 다시 한 번 지성의 손목을 붙잡고 말했다. 지금 가야돼. 말이 끝나자마자 재민은 걸음을 옮겼다. 손목이 붙잡힌 지성은 얌전히 재민을 따라갔다. 붙잡힌 손목이 근질거렸다.

 

 

 

 

 

-

 

 

 

 

 

현재 바이러스 발생지역으로 의심되는 서월시 전체가 봉쇄되었습니다. 서월시에 남아있는 생존자 분들은 이상 현상을 보이는 시민을 발견하시는 즉시 몸을 숨기고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시길 바랍니다. 바이러스 감염자로부터 할큄이나 물림을 당한 사람이 있다면 즉시 격리조치가 필요합니다. 현재까지 들어온 정보로는 감염자로부터 상처를 얻은 사람이 완전히 감염자의 모습이 될 때까지 소요되는 시간은 약 2시간 정도입니다. 우리 정부는 감염자를 살해하거나, 상해를 입히는 행위를 허가 했지만, 감염 의심자에게 상해를 입히거나 살해하는 행위는 엄중한 처벌을 내릴 것이라 공표해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정부가 발표한 감염자의 특징은....

 

 

 

빠르게 말을 전하는 뉴스 소리에 재민이 눈을 떴다. 단정히 앉아있는 야구소년의 뒷모습이 보였다. 뉴스 내용을 들으니 어제의 그 끔찍한 광경들이 꿈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부스스 침대에서 일어난 재민이 한숨부터 쉬었다.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팠다. 두통의 출처가 며칠 동안 이어진 야근 때문인지, 아니면 저 밖에 있는 감염자니 뭐니 하는 좀비새끼들 때문인지 모를 일이었다. 이불이 부스럭대는 소리가 나자 지성이 이쪽을 흘끔 쳐다보고 제 핸드폰으로 다시 시선을 옮겼다.

 

 

“일어 나셨어요? 나재민...형.”

 

“...내 이름은 또 어떻게 알았냐.”

 

“그냥 가방 좀 뒤져봤죠. 명함 있던데요? 아 저는 박지성이라고 해요.”

 

“알아. 등번호 25번인 것도 알고.”

 

 

그제야 자신이 유니폼을 입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는지 지성의 입에서 아- 소리가 났다. 재민이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갔다. 커튼을 살짝 걷어보니 밖에는 반시체인 사람들 몇이 느릿느릿 걸어 다니고 있었다. 다시 커튼을 친 재민이 뒤를 돌아보자 지성은 어느새 백팩을 등에 메고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재민은 어이가 없었지만 일단 지성이 뭘 하려는지 잠시 지켜보려는데 어김없이 지성의 입에선 뻔한 소리가 나왔다.

 

 

“저 이제 가도 되죠?”

 

 

재민이 한숨을 또 한 번 쉬었다. 밖에 상황을 알고는 나가겠다고 하는 건가. 지성이 주섬주섬 제 핸드폰을 꺼내 화면을 보여줬다. 국가재난사태 바이러스 대처방법. 저 이거 다 읽었어요, 저 좀비 같은 사람들 시력이 안 좋아서 소리에 반응하고, 높은 데로 올라가면 잘 못 쫓아온대요. 뭐 물리면 끝이긴 하지만. 재민은 이 앙큼한 고딩에게 뭐라 말을 해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집에 부모님 계시지? 거긴 안전하대?”

 

“...”

 

“부모님한테 연락 와서 너네 집 안전하다고 들으면 그때 가도...”

 

“안계신데요.”

 

“어?”

 

“부모님 안계세요. 저 혼자 살아요.”

 

“어...미안...”

 

 

지성은 어깨를 으쓱했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미안할 거 까진 없구요, 아빠랑 같이 살았었는데 지금 감옥 가있어요. 현관에 세워놨던 피 뭍은 배트를 다시 집어든 지성이 말했다. 저 가야해요. 아니 그러니까 왜. 가족도 없고, 가봐야 혼자일 그 집에 왜 굳이 위험을 무릎 쓰고 가려는 건지. 재민은 왜인지는 몰라도 지성을 붙잡아야 할 것 같았다. 버스 안에서 망설임 없이 여자의 머리통을 날리던 지성의 모습이 자꾸 머릿속에 재생됐다. 으. 가벼운 두통에 재민이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학교.”

 

“뭐?”

 

“학교 가야해요. 지난주부터 합숙 시작이었는데 저 재활 받느라 일주일 늦어서.”

 

 

허.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야 이 상황에 훈련 같은 걸 하겠냐? 재민이 목소리를 높여 소리쳤다. 재민의 목소리를 듣고 순간 창밖의 좀비들의 시선이 쏠렸다. 순간 흠칫한 재민이 다시 목소리를 낮췄다. 당연히 훈련도 못하겠지. 지성은 멀뚱한 얼굴로 재민에게 조곤조곤 말대꾸를 했다.

 

 

“죄송한데 저는 남은 게 야구밖에 없어서요.”

 

“그래도 그렇지 까딱하면...”

 

“야구부 애들도 살아있나 봐야하고.”

 

 

부모님은 안계시니 걱정할 사람이 친구밖에 없는 걸까. 재민은 혼자 그렇게 생각하고 입을 닫았다. 저 태연한 고딩이 자꾸 신경 쓰이는 이유가 이거였나. 회사생활 어언 4년, 사람 보는 눈만 성장한 재민은 지성을 처음 봤을 때부터 묘한 느낌을 받았다. 애가 좀, 불안정한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그 소란 속에 잠에서 깨서 하는 소리가 지옥에 온거냐 느니. 그렇게 말한 거 치고 평온하게 사람...아니 좀비를 죽이는 모습 같은 것들에서 말이다. 곧 죽어도 자기 집까지 가야한다는 이유가 야구부 때문이라니. 퍽 청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형 무서워서 그러죠.”

 

“뭐?”

 

“저 붙잡아 놓는 거. 혼자 있기 무서워서 그런 거 아니냐구요.”

 

“참나 아니거든. 그냥 이럴 때 혼자인 것 보단 둘이 나으니까 그러지.”

 

“형도 혼자예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재민 역시 가족이랄 것은 딱히 없었다. 있어도 얼굴 한번 보지도 못하고 자라왔다. 나름 치열하게 살아서 나이는 나이대로 먹었지만 이럴 때 괜찮냐고 물어볼 사람 같은 건 없었다. 지성에게서 느꼈던 불안정함. 재민만이 알아볼 수 있는 것이었다. 제 고등학생 때를 보는 것 같았다. 겉은 멀쩡해 보이지만 툭 치면 어디로 터질지 모르는 상태. 재민은 제 방 한구석에 있는 나무 탁자를 들어 냅다 바닥에 던졌다. 싸구려 탁자는 힘없이 부러졌고 재민이 탁자 다리를 하나 집어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제 티셔츠 하나를 둘둘 감았다. 제법 무기 같은 것이 재민의 손에 쥐어졌다.

 

 

“혼자 맞아. 그러니까.”

 

“...”

 

“같이 가.”

 

 

지성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겁쟁이. 작은 목소리가 재민의 귀에 들렸지만 반박하진 않았다.

 

 

 

-

 

 

 

지성이 야구를 시작한건 순전히 재능 때문이었다. 중학교 1학년 때 아버지가 살인미수로 깜빵에 들어가 버리는 마당에 지성은 지방에 있는 고모네 집으로 보내졌고, 우연히 그 지방 학교가 야구부로 유명했을 뿐이었다. 고모는 처음에 야구하는 것을 반대했다. 빠따 들고 다니는 게 지애비 닮아서 사람 패고 다닐 것 같다는 어이없는 이유였다. 재능이 있다는 학교 코치의 말에 그래도 고모부가 야구는 계속 하게 해줬다. 지금 너한테 들인 돈, 나중에 열배로 갚아 줄수 있지? 자식내외가 없던 고모네 부부는 입버릇처럼 그 말을 했다. 그래도 지성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야구 외에 관심이 가는 것은 딱히 없었고, 꽤 재미있었다.

 

 

프로선수를 목표로 야구명문인 서월고에 입학했다. 고모네 집에서 나와 혼자 살아야했지만 지성은 오히려 조금 숨통이 트였다. 이젠 야구만 열심히 하면 됐었다. 중학교 경기 내내 4번 타자를 맡았던 지성은 고등학교에 입학해서도 유명했다. 쟤가 그 호원중학교 박지성이라며? 나쁘지 않은 숙덕거림이었다. 야구부 애들도 다들 지성을 반겼고 지성을 좋아했다. 너만 있으면 이번에 서월고가 우승할 수도 있겠다. 입에 발린 칭찬들은 지성에게 별 감흥은 없었지만 그저 미소만 지었다. 덕분에 고등학교에 와서도 4번 타자를 거의 놓치지 않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진 않았다.

 

 

“야 박지성 너네 아빠 살인자라며.”

 

 

지성은 조금 억울했다. 살인자가 아니라 살인미수인데. 그리고 아빠가 살인자인거랑 내가 야구 하는 거랑은 상관없잖아. 몇 번은 그렇게 말하고 다녔다. 하지만 그 이후로 야구부 애들뿐만이 아니라 같은 반 애들도 대놓고 지성을 피하는 것이 느껴졌다. 개의치 않은 척 했다. 난 야구만 잘하면 되니까. 대학 들어가는데 아빠가 살인자라고 안받아주는 건 아니잖아. 지성은 혼자 덤덤히 생각했다. 개의치 않아야했다.

 

 

“...이상 다음 경기 주전이다.”

 

 

개의치 않으려 했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박지성 야구인생 처음으로 벤치에 앉게 되었다.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그동안 저를 에이스 타자라고 치켜세워주던 야구부 놈들은 이번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개새끼들. 지성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렇게 속으로 욕을 뱉고 코치를 찾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코치님 저 왜 빠졌어요. 코치는 지성의 얼굴을 보고 한숨만 푹푹 쉬었다.

 

 

“지성아, 다른 애들도 경기 좀 뛰고 해야지.”

 

“저 프로 가야해요. 지금부터 큰 경기 하나라도 안 뛰면 지장 있는 거 아시잖아요.”

 

“하...그러니까 그게, 지성이 너 요즘 이상한 소문 있는 건 알지.”

 

“소문 때문에요? 저희 아빠 깜빵 가있다고?”

 

“나도 너 주전 시키고 싶지. 근데 이사장님이 그 얘길 어디서 듣고 오셔서...”

 

“주전 시키고 싶으시면 시켜주면 되잖아요.”

 

“지성아...”

 

“그 소문 진짜예요. 그래서 저는 꼭 경기 뛰어야해요.”

 

 

그 때 그 말을 한 것이 맞는 건지, 아니면 하지 말았어야 하는지. 지성은 아직까지도 아리송했다. 저 넣어주세요. 뭐든지 할게요. 그래 그 말. 저도 모르게 술술 뱉어버린 그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을까? 코치는 바들바들 떨리는 지성의 손목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정말, 뭐든지 할 수 있니? 아직도 그 때 생각을 하면 소름이 목뒤까지 끼쳤다. 하지만 지성에겐 정말로 야구밖에 없었다.

 

 

고모, 고모 말이 생각이 났다. 지애비 닮아서 사람 패서 죽이는 거 아니냐고, 고모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지성은 그 이후로 코치를 죽여 버리는 상상을 꽤 여러 번 했다.

 

 

 

 

-

 

 

 

 

신이 노하셨다. 악마들이 날뛰는 지옥이 찾아올 것이다. 남아있는 어린양들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기도를 올려라. 지성이 바닥에 뿌려진 찌라시 한 장을 들어 물끄러미 쳐다봤다. 재민이 물었다. 뭐야, 종교라도 있어? 지성은 고개를 저었다. 신 같은 게 어디 있어요.

 

 

“그럼 버스에선 왜 지옥이니 뭐니 했냐.”

 

“...신은 없어도 지옥은 있으니까요.”

 

“어쭈, 꼬맹이 치고 꽤 철학적인 말을 한다?”

 

“제가 꼬맹이면 형은 아저씨거든요. 아저씨 뒤에.”

 

 

지성이 말을 이어가다 갑자기 배트를 휘둘렀다. 재민이 깜짝 놀라 반사 신경으로 몸을 숙이자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도 없이 재민의 뒤로 다가왔던 감염자의 머리통이 날아갔다. 지성의 배트에 또 피가 묻었다. 재민은 제 얼굴에 튄 피를 닦아내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씨발 이거야 말로 생지옥이 따로 없네. 지성도 제 뺨을 유니폼 소매로 슥 닦아냈다. 새하얀 유니폼은 이미 시뻘건 피들이 튀어 엉망이 된지 오래였다. 바닥엔 찐덕한 피가 강을 이루고 있었고 내장인지 살점인지도 모를 것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재민은 길을 걷다 간혹 헛구역질을 했지만 지성은 그저 앞만 보고 걸어갔다.

 

 

“넌 진짜 비위도 좋다.”

 

“글쎄요. 한번쯤은 이런 상상해보지 않아요?”

 

“뭐?”

 

“사람 같지도 않은 것들 패죽이는거요.”

 

 

살벌한 소리를 하면서 지성의 표정은 하나도 변하질 않았다. 그런 적이 있었나. 재민은 딱히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았다. 지성의 배트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 재민은 애써 말을 돌렸다. 큰길은 여기저기 버려진 차들로 막혀있었다. 이 길로는 못갈 것 같은데. 지성이 주변을 스윽 둘러봤다. 테트리스처럼 막혀있는 차들 사이로 감염자들이 걸어 다니고 있었다.

 

 

“학교 뒤쪽으로 돌아 가야할 것 같은데. 그러면 학교를 무조건 가로질러 가야해요.”

 

“잘됐네. 너 야구부 애들 보고 싶다며.”

 

“...보고 싶다고는 안했는데요.”

 

 

조금은 날이 서 있는 대답이었지만 재민은 그저 남고딩의 수줍음 정도라 생각했다. 그게 지성의 진심이라는 건 나중에야 알았지만. 날이 어둑어둑해지자 감염자들의 움직임도 눈에 띄게 줄었다. 해가 떠있는 시간보단 이동하는데 수월했지만 그래도 긴장을 늦출 수는 없었다. 재민이 들고 있는 나무막대기에도 피가 딱딱하게 굳어 검붉은 색이 되어가고 있었다. 나라에서 감염자를 죽이는 게 허용되었다고 해도 영 찜찜한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재민이 감염자의 머리통을 치면 열에 일곱은 다시 고개를 쳐들었다. 그럴 때면 지성이 옆에서 야구빠따를 세차게 휘둘러 도와줬다.

 

 

“그렇게 마음이 약해서 어떡해요.”

 

“...”

 

“그러다 죽는 건 형이에요.”

 

 

그렇게 조곤한 잔소리를 몇 번 더 듣고 나니 어느새 학교 뒷문이 보였다. 아무도 없는 건지 조용한 편이었다. 지성이 운동장 근처로 가서 크게 둘러보았다. 몇 번이고 뛰었던 운동장이었다. 지성에겐 익숙한 풍경이었다. 가끔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을 때, 속이 답답해 미쳐버릴 것 같을 때에 밤에 몰래 운동장을 하염없이 뛰곤 했다. 지성이 피식 실없는 웃음을 흘렸다. 세상은 뒤집어졌는데 오히려 지성의 속은 그 어느 때보다 잔잔했다. 옆에 서있는 재민은 말없이 함께 걸음을 맞춰줄 뿐이었다.

 

 

“형은 무슨 일해요?”

 

“갑자기 그건 왜. 나 그냥 회사원이지 뭐.”

 

“회사원 그거 할 만해요?”

 

“좆같지. 왜 물어봐. 넌 야구하면 되잖아. 보니까 이 학교 야구명문이더만. 그럼 꽤 잘하는 거 아냐?”

 

“잘하는 건 맞는 것 같아요. 나보다 잘하는 애를 못봤으니까.”

 

“스윙치는 폼이 예쁘긴 하더라.”

 

“하하 언제 봤다고, 설마 사람 대가리 치는 거 보고 말하는거예요?”

 

 

그것도 스윙이지 뭐. 재민이 웃으며 말했다. 지성도 어색하게 따라 웃었다. 지금 이 상황이요. 좀비니 뭐니 이런 것들 다 사라지고 나면 다시 야구 할 수 있을까요? 재민은 꽤나 감성적인 질문에 허허 웃어줄 수밖에 없었다. 넌 진짜 야구밖에 생각안하냐. 지성이 소리 내 웃었다. 그러게요.

 

 

“남은 게 야구밖에 없는데.”

 

 

그게 날 지옥에서 꺼내주질 않아요. 지성이 말을 마치자마자 체육관 건물에서 비명소리가 들렸다. 재민이 뭐라 지성에게 더 묻기도 전에 지성이 발걸음을 옮겼다. 재민도 황급히 지성을 따라 뛰었다. 체육관 앞까지 단숨에 온 지성이 숨을 고르며 조심스럽게 유리문을 밀었다. 넓은 체육관 안에 웅성웅성 말소리가 들렸다. 한구석에 지성과 같은 유니폼을 입은 애들 몇 명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지성을 발견하고 어- 하는 소리를 냈다. 시선이 모두 지성에게로 꽂혔다. 박지성 아니야? 지성이 고개를 끄덕 하고 애들이 있는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재민은 출입구 쪽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야구가 전부인 박지성의 팀원들. 재민은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푹 쉬었다.

 

 

“야 씨발 잠깐 오지 말아봐 박지성.”

 

“저 새끼 저 피 뭐야? 그거 니 피야?”

 

 

지성이 고개를 내려 제 유니폼을 봤다. 눈앞에 있는 애들의 새하얀 유니폼과는 반대로 시뻘겋게 물들어 있었다. 들고 있는 배트에서도 채 마르지 못한 피가 한두 방울씩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경계심 가득한 야구부원들이 물었다. 야 박지성 너 물렸어? 지성은 말이 없었다. 박지성 저 새끼 물려서 감염자로 변하고 있는 거 아냐? 아 시발 어떡하냐. 낮은 말소리들이 체육관에 울렸다. 가만히 있는 박지성의 뒷모습을 보던 재민이 대신 말을 하려던 때였다. 지성이 입을 열었다. 안 물렸어.

 

 

“그럼 씨발 그 피 그거 다 뭐야.”

 

“이거? 감염자들 대가리 깨다가 묻은 거야.”

 

“뭐?”

 

“스윙 연습 되고 좋더라.”

 

 

재민이 묘한 분위기를 느꼈다. 웅성대던 애들이 조금 경계를 풀었다. 남자애 하나가 다리가 풀린 듯 풀썩 주저앉으며 물었다. 왜 왔냐. 박지성은 대답했다. 왜 오긴. 합숙기간이잖아. 부원들의 시선이 다시 한 번 지성에게로 쏠렸다. 미친 새끼. 누가 말했는지 모를 단어가 불쑥 튀어나왔다. 지성이 코를 찡긋 했다. 훈련할 분위기는 아닌가보네. 혼잣말 하듯이 뱉었다.

넌 어차피 훈련 안 나와도 경기 나갈 수 있잖아. 가시 돋친 말에 지성은 아무 말 안했다. 발끝에 피 묻은 배트를 통통 치던 지성이 희미하게 들려오는 신음 소리에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부원들이 몰려있는 반대쪽에 위치한 창고에서 나는 소리였다. 재민도 소릴 듣고 그쪽을 쳐다봤다. 점점 심해지는 신음 소리와 창고 문을 쿵쿵 두드리는 소리에 부원들은 지들끼리 더 꽁꽁 뭉쳤다. 허, 하고 지성이 헛웃음을 지었다.

 

 

“누가 물렸어?”

 

“...현우.”

 

“현우는 예전부터 멍청하긴 했지.”

 

“야 마침 잘됐다 지성아.”

 

 

바닥에 앉아있던 놈이 말했다. 박지성 니가 죽여줘라 현우. 그 말에 한순간 강당이 조용해졌다. 출입문에 기대어 있던 재민이 그 소리를 듣고 걸음을 옮겼다. 잠시 동안 이어지던 침묵은 그새 소란스러움으로 바뀌었다. 박지성 너는 밖에서 사람들 존나 죽이고 왔으니까. 너 평소에 현우 싫어하지 않았냐? 야 지성아 그거 알아? 김현우 저 새끼가 너네 아빠 살인자라고 존나 퍼뜨리고 다녔어. 나, 나도 들었어. 그리고 저번에 연습할 때 공으로 니 어깨 맞춘 것도 일부러 그런 거라고 존나 자랑하고 다녔어. 너 코치한테 몸 대줘서 주전 겨우 나간다는 소문도 김현우가 냈어. 니가 김현우 제일 죽여 버리고 싶을거 아냐. 감염자 죽이는 건 허용된다며, 벌 안받는다며. 그러니까.

 

 

박지성 니가 죽여.

 

 

 

말없이 그 소란을 듣던 지성이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다가 어깨를 들썩이며 웃기 시작했다. 소란스럽게 지성에게 고자질을 하던 부원들이 다시 조용해졌다. 지성이 고개를 들었다.

 

 

“당연히 현우 죽이고 싶지.”

 

“그, 그렇지? 우리가 옆에서 도와 줄테니까...”

 

“안 도와줘도 돼.”

 

 

지성이 몸을 뱅글 돌려 창고 쪽으로 향했다. 가까워질수록 신음 소리가 더 크게 났다. 근데 좀 이상했다. 간간히 말을 하는 소리가 들렸다. 살려줘. 살려줘. 지성이 창고 문 앞에서 다시 웃음을 흘렸다. 배트를 들어 조악하게 잠겨 있던 자물쇠를 내려쳤다. 굳게 닫혀있던 창고 문을 벌컥 열었다. 문 앞에 웅크려서 덜덜 떨고 있는 김현우가 보였다. 살려줘. 살려줘. 같은 단어만 반복하는 그 모습은 꽤나 볼품없었다. 감염자도 아직 안된 새끼를 나한테 죽이라고 한 거지. 지성은 제 발밑에서 덜덜 떠는 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봤다. 말없이 배트를 들었다. 하지만 내리칠 수가 없었다. 그런 지성의 뒤에서 목소리 하나가 들렸다.

 

 

“박지성.”

 

“...”

 

“지금 그 새끼 치면 너 살인자 되는 거야.”

 

 

고개를 돌리니 조금 떨어진 곳에 서있던 재민이 보였다. 가만히 서서 상황을 지켜보던 재민이 지성에게로 걸어가 들고 있던 배트를 빼앗았다. 그리고 지성의 손목을 붙잡고 체육관을 빠져나가려 했다. 하지만 고개를 숙이고 제 아래 있는 김현우라는 놈을 쳐다보고 있는 지성의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재민이 손을 지성의 양 볼에 올려 고개를 들게 만들었다. 야 박지성. 울지 마. 언제나 태연했던 그 얼굴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아, 아저씨 뭔데요!”

 

“나? 박지성 보호자.”

 

“빨리 박지성한테 저 새끼 죽이라 해요!”

 

“들어보니까 박지성 말고 너네가 이 새끼 친구인 것 같은데.”

 

“...”

 

“친구가 해결해. 괜히 박지성 손 더럽히지 말고.”

 

 

재민이 우악스럽게 지성을 붙들고 출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웅크려서 살려달라고 울던 김현우라는 놈이 움직임을 멈췄다. 곧 기괴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야구부원들은 그 모습을 보고 패닉에 빠져 소리치기 시작했다. 씨발! 어차피 살인자 아들 새끼가 살인하는 게 뭐 어때서 그래요! 밖에서 사람들도 존나 죽이고 온 것 같은데! 와장창 하는 소리와 함께 출입구인 유리문이 깨졌다. 지성의 배트로 문을 내리친 장본인인 재민이 미쳐서 소리치는 야구부원을 노려봤다.

 

 

“말조심해. 버러지 같은 새끼야.”

 

 

끄어억 하는 감염자의 그 기괴한 소리가 체육관에 울려 퍼졌다. 혼비백산이 된 놈들을 뒤로하고 재민이 지성을 붙잡아 체육관을 나왔다. 지성의 얼굴에선 눈물이 아직도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재민이 제 옷소매로 눈물을 닦아줬다. 미안하다. 사과부터 불쑥 나왔다. 너 혼자 너무 오래 버티게 했지. 미안해.

 

 

“저 새끼들 어떻게 해줄까.”

 

“...다 뒤져버렸으면 좋겠어요.”

 

 

울먹거리는 대답이 돌아왔다. 재민은 씨익 웃어주며 주위를 둘러봤다. 체육관 옆 주차장에 주차된 차 몇 대가 보였다. 배트를 들고 재민이 주차장으로 걸어갔다. 박지성을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같은 동네 살면서 왜 진작에 알지 못했을까. 왜 더 일찍 알아채지 못했을까. 저 어린애가 혼자서 온갖 고생을 하고, 속이 썩어 들어가고 있다는 걸. 왜 처음 만났을 때 눈치 채지 못했을까. 매일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박지성은 지옥에 도착한 기분이었을 거라는 걸. 삐삐삐- 여러 대의 자동차 경보음이 요란스럽게 울리기 시작했다. 밤의 조용한 동네에서 유일하게 시끄러운 공간이었다. 재민이 지성의 손을 다시 붙잡고 달리기 시작했다.

 

 

 

 

-

 

 

 

 

지성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현관문을 꽁꽁 잠갔다. 안전고리까지 철저하게 난 뒤에야 한숨을 푹 쉬었다. 그렇게 가고 싶다던 집에 도착했는데도 지성은 묘하게 불안해보였다. 자그마한 원룸에 멋쩍게 앉아있던 재민이 입을 열었다. 와서 눈 좀 붙여. 너 우리집에서도 한숨도 안 잤잖아. 불안한 듯 좁은 현관을 왔다갔다 거리던 지성이 쭈뼛쭈뼛 재민의 옆으로 다가갔다. 나란히 앉은 침대는 둘이 눕기엔 작은 침대였다.

 

 

“차라리 형네 집에서 좀 잘걸 그랬나봐요.”

 

“너네집인데 왜 못자.”

 

“...이 집 코치님이 아시거든요.”

 

 

비밀번호까지 다 알아요. 가끔 자고 있을 때 막 들어오시기도 하거든요. 안전고리 해놓으면 훈련 가서 뒤지게 맞거든요. 그래서 잠을 편하게 못자요. 누가 몰래 들어 올까봐. 지성이 재민의 어깨에 쓰러지듯 기댔다. 근데 왜 그렇게 집에 오고 싶어 했어. 재민이 조용히 물었다.

 

 

“...아까 다 들었죠? 나 뭐 몸 대주고 경기 나가느니 뭐니.”

 

“...”

 

“좀 억울하긴 한데. 코치님 말 안 들으면 경기 못나가긴 했어요.”

 

“...”

 

“회사원 보다 쪼끔 더 좆같죠.”

 

 

근데 이 사태가 터진 거예요. 그때 형이랑 버스에서 여자 대가리 터뜨리고 나서, 버스 내리자마자 바로 든 생각이 뭔 줄 아세요? 아. 이건 기회다. 코치님을 이 기회에 죽여 버리자. 코치님이 우리 집 올 때마다 죽여 버리고 싶다는 생각 진짜 자주 했거든요. 야구고 뭐고 아빠 따라 깜빵에나 갈까. 근데 지금은 뭐. 사람 하나 죽는다고 아무도 신경 안 쓰겠구나 싶어서. 학교 바로 앞이니까 사태 좀 심각해지면 코치님이 여기로 도망 올수도 있을 것 같아서, 오면 죽여 버리려고.

 

 

“저 미친 것 같죠?”

 

 

지성이 말을 마치고 물었다. 재민은 그저 지성을 꾸욱 안아줬다. 숨 막혀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지성은 어떤 저항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안겨있었다. 지성의 얼굴이 닿아있는 재민의 어깨가 조금 축축해지는 것 같기도 했다. 한참이나 지성을 안고 있던 재민이 색색거리는 숨소리를 눈치 채고 조심스럽게 지성을 품에서 떼어냈다. 까무룩 잠이 든 지성의 눈물 젖은 얼굴이 보였다. 침대에 지성을 눕힌 재민이 잠시 그 얼굴을 보다가 마른세수를 했다. 배터리가 아슬아슬하게 남아있는 핸드폰을 들어 뉴스를 확인했다.

 

 

 

정부가 서월시에 헬기 및 군병력을 투입해 생존자 구조작전을 시행할 것을 발표 했습니다. 학교, 유치원 등 단체기관의 구조가 일순위로 이루어질 것이고, 보다 빠른 구조를 위해 가정집에 거주하고 계신 생존자분들은 본인을 포함한 생존자의 수를 창문에 표기하는 것을 당부했으며, 다만 이 과정에서 손톱이나 이빨 등 신체부위를 통한 상처가 있는 감염 의심자들은 구조자에 포함되지 않는다 발표했습니다. 이에 따른 인권 논란이 다시 거세질 것으로 보이나...

 

 

 

영상과 기사 글 몇 개를 읽던 재민이 몸을 일으켜 집을 둘러봤다. 한 칸짜리 작은 집. 살림살이가 몇 없는 단출한 박지성의 집. 제 집과 별 다를 건 없었지만 재민은 괜히 더 입 안이 써졌다. 서랍을 뒤져 검은 스포츠 테이프를 하나 찾아낸 재민이 몸을 일으켰다.

 

 

 

 

 

삐삐삐삐삐-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에 지성이 몸을 벌떡 일으켰다. 덜컥. 안전고리 때문에 열리다 만 현관문이 보였다. 지성이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부엌에 있는 칼 하나를 들었다. 현관 앞까지 가자 좁은 틈 사이로 누군가 흐느끼고 있었다. 지, 지성아. 문 좀 열어줘. 바닥까지 내려간 목소리가 지성을 불렀다. 코치였다.

 

 

“싫어요...”

 

“지성아. 제발 문열어줘. 학교에서 애들이랑 있었는데. 자, 잠깐 밖 좀 살펴보고 왔더니 학교에 감염자들이...”

 

“...애들은요?”

 

“다 죽었거나 감염됐어... 난 도망쳐 나왔고.”

 

“...그렇구나. 아쉽다.”

 

“어, 얼른 문 열어! 소식 들었지? 오늘부터 구조작업 할거라고. 나랑 같이 이 집에서 구조대 기다리자. 그럼 살아서 나갈 수 있어.”

 

 

등 뒤에 칼을 숨긴 지성이 여전히 문 하나를 가운데 두고 코치를 바라봤다. 애들 다 죽었으면, 가을 야구 경기는 못나가겠네요. 몇 명은 남겨둘 걸. 지성이 발끝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게 지금 무슨 소리야 박지성. 빨리 이문 안 열어? 지성아. 그래, 앞으로 야구 더 많이 해야지? 근데 뒤에 숨긴 건 뭐야? 코치는 계속 소리를 쳤다가 살살 지성을 달랬다가, 혼자 제정신이 아닌 사람인양 굴었다. 지성이 칼을 들고 있는 손을 코치에게 보여줬다. 코치가 문에서 한 발짝 떨어졌다가 다시 가까이 왔다. 덜덜 떨리는 지성의 뒤로 재민이 걸어와 어깨를 감싸줬다.

 

 

“코치님 저 야구 하고 싶은지 잘 모르겠어요.”

 

“바, 박지성 너 잘 생각해. 뒤에 저 새끼는 또 뭐야!”

 

“다들 저희 아빠 때문에 저를 싫어하고, 야구 하는 것도 싫어하면 거기서 그만해도 됐을 텐데.”

 

“그래 말 잘했다. 너 여기서 나 찌르면 너네 아빠랑 똑같이 살인자 되는 거야!”

 

“저는 철저하게 혼자라서, 돈도 빽도 없고 가족도 없었는데.”

 

“아, 뒤에 저 새끼가 새로 몸대주는 새끼야? 그래서 문 안열어주는거야 지성아?”

 

“무슨 오기로 지옥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갔을까요.”

 

 

문 열라고 씨발새끼야! 지성이 제 코앞에서 침 튀기며 소리치고 있는 코치를 보며 코를 찡긋했다. 코끝이 매웠다. 그리고 칼을 움직여 제 손목에 올렸다. 그래 이러면 됐을 텐데. 칼을 든 오른손에 힘을 주니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손을 움직이려는데 재민이 부드럽게 지성의 손을 붙잡았다.

 

 

“그렇게 마음이 약해서 어떡해 지성아.”

 

 

지성의 손에 있던 칼을 가져간 재민이 좁은 문틈 사이로 코치를 찌르며 말했다. 가슴께에 칼이 꽂힌 코치가 억- 하는 소리를 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현관문 밑으로 피가 흘러들어오는 것을 본 지성도 털썩 주저앉았다. 잠금 고리를 푼 재민이 문을 열자 코치가 뒤로 나자빠졌다.

 

 

“박지성.”

 

“...”

 

“빠따 좀 빌리자.”

 

 

칼이 꽂힌 주제에 도망가려는 코치를 보고 인상을 찌푸린 재민이 현관 한쪽에 기대어져 있는 야구배트를 들었다. 알루미늄 배트가 복도 바닥에 끌리는 소리가 날카로웠다. 별로 길지 않은 복도 끝까지 기어서 도망가던 코치가 소리쳤다.

 

 

“너 이거 씨발 살인이야 이 새끼야. 아직 감염 다 되지도 않은 사람 찌르고 이런 거 다 씨발.”

 

“...물리긴 물렸었구나? 그러니까 문 열어달라고 지랄발광을 하지.”

 

“...박지성 너도 인생 끝이야. 이거 다 신고 먹으면 너도 이 새끼도 다 범죄자라고!”

 

“어떻게 신고하게, 뭐 좀비 돼서 신고하게?”

 

 

너는 내가 좀비도 안 되게 할 거지만. 재민이 있는 힘껏 배트를 들어 코치의 머리를 내려쳤다. 둔탁한 소리가 계속해서 들렸다. 두어 번의 배트질에 코치의 얼굴은 알아볼수도 없을 정도로 뭉개졌지만 재민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재민이 배트를 내리칠 때마다 코치의 몸이 움찔거렸다. 지성은 현관에 주저앉아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하하... 실없이 나오던 웃음은 어느새 점점 커졌다. 재민이 거친 숨소리를 내쉬며 코치인지도 모를 시체를 내려다 볼 때쯤엔 거의 박장대소를 하고 있는 지성이었다. 지성은 이 웃음이 왜 나오는지도 몰랐다. 기뻐서 나오는 웃음이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눈물까지 찔끔 날 정도로 한참 웃은 지성이 서서히 웃음을 멈췄다. 숨을 고르며 저를 바라보고 있는 재민에게 물었다. 재민이 형.

 

 

“저 형이 좋아진 것 같다고 지금 말하면.”

 

“...”

 

“저 미친놈 같죠.”

 

“여기 지금 안 미친 사람이 어디 있어.”

 

 

땡그랑- 배트가 복도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고 재민이 걸어와 지성을 와락 안았다. 저를 안은 재민의 몸에서 진한 피냄새가 났지만 지성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지성도 손을 뻗어 재민의 등을 껴안았다. 자꾸, 자꾸 눈물이랑 웃음이 같이 나왔다. 뿌옇게 된 지성의 시야로 제 방 창문이 보였다. 숫자 2. 검정색 테이프로 덕지덕지 붙여놓은 글씨였다. 멀리서 헬리콥터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 M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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