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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 등장하는 종교 단체는 사실과 무관한 허구의 종교 단체임을 밝힙니다.

 

 

 

“같이 살아남길 기도하자.”

 

 누구한테 기도하는데요. 신들한테? 기도해봤자 들어주는 건 없던데요. 건조한 어투로 말한 지성은 고개를 돌려 불을 켜도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터널과 점점 붙어오는 좀비들을 보며 한숨을 뱉었다. 그냥 그때 콱 죽었어야 했는데. 지성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온 건 처음이다. 재민은 지성의 말에 놀란 듯 어깨를 움츠렸다.

 

 재민은 지성의 눈에서 볼로 뚝뚝 흐르는 눈물을 닦아줬다. 당장 여기를 어떻게 벗어나야 할지 고민을 하는 게 먼저였지만, 재민은 그런 지성을 냉정하게 두고 볼 순 없었다. 지성의 볼에 재민의 손이 닿자, 반대쪽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은 지성이 자신의 소매로 벅벅 닦았다. 지성은 코를 훌쩍이더니 이내 다리를 의자로 올려 몸을 웅크렸다.

 

 수를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좀비들은 점점 덜덜거리는 차로 몰려오고 있었고, 한 좀비가 괴성을 지르면 그 소리는 터널을 타고 울렸다. 그 소리가 다른 좀비들도 소리를 지르게 만들었고 몇 분간 기괴한 소리가 터널에서 메아리쳤다. 지성은 자신이 처한 이 상황에서 보이는 끝을 예상하고 받아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재민은 달랐다. 자신이 여기까지 살아남은 이유, 여러 위험을 감수하며 지성을 챙긴 이유에는 지성이 있었다.

 

 지성이 고개를 들었다. 갑자기 덜컹하고 흔들리는 차에 벨트에 배가 꽈악 눌려 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는 속에 얼마 들어있지도 않은 것들을 게워낼 게 뻔해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은 것이다. 고개를 돌려 재민을 쳐다봤다. 이곳에서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 미안함과 죄책감이 와르르 몰려들었다. 재민은 정면을 주시하며 기어를 후진에 놓고 페달을 세게 밟아 속도를 올려 뒤로 가며 차에 붙거나 가까이에 있는 좀비들을 한 번 떨쳐내고, 다시 기어를 바꿔 페달을 밟아 또 좀비를 떨쳐내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터널은 여전히 어둡고 음산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고, 터널의 끝이 어딘지 가늠하기 힘들었다.

 

 페달을 밟을 때마다 무언가 연신 부딪히고 깔리고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좀비들이 차에 부딪히며 내는 괴상한 소리에 소리만으로도 지성은 속이 더부룩해졌다. 재민은 계속해서 몰려오는 좀비를 보고도 지친 기색을 내지 않았다. 입술을 더 세게 깨물었다. 차는 조금씩 좀비들을 들이받고, 밀며 앞뒤로 공간을 만들면서 천천히 터널로 들어가고 있었다.

 

“지성아.”

“나는 지성이, 너 믿고 기도할게. 너는 형 믿고 기도해줘.”

 

 신이 아닌 사람에게 하는 기도. 재민은 아마 놀란 눈으로 자신을 쳐다볼 지성을 눈에 담지 않으려고 했다. 담는 순간 운전에 집중하지 못할 것 같았다. 이런 상황에서 흔들리게 만드는 건 몰려오는 좀비도 아니고, 언제 시동이 꺼질지 모르는 차도 아니었다. 지성이 가장 재민을 흔들리게 만들 수 있었다. 그걸 잘 알고 있는 재민은 앞만 응시했다.

 

 좀비들은 지치지도 않는지 기이한 소리와 행동을 하며 여전히 빛과 덜덜거리는 소리가 나는 차로 몰려들었다. 차에 세게 부딪히거나 깔려 으깨진 좀비들은 움직임을 멈췄지만 다른 좀비들은 죽은 것에 대한 예의도 없는지 그걸 밟으면서 차로 계속 붙어왔다.

 

 

-

 기도. 조금 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이 단어를 들은 지성은 묘한 표정을 짓다가 희미하게 웃었다. 자신과 재민이 서월시를 뜬 이유, 그곳에는 생존자들끼리 보호를 위한 명목으로 괴상한 종교가 생겼었다. 매일 그곳에서 믿는 신에게 기도를 올리고 그 기도에 참석하면 식량과 안전한 거처를 제공하겠다고 하면서, 생존자를 모았다.

 

 좀비가 많이 퍼진 그곳에서 어떻게 사람들을 모았는지 모르지만, 재민도 그 이야기를 듣고 여기로 왔으니까. 그렇게 모인 생존자들은 재민의 생각보다 조금 더 많았다. 어림잡아 서른 명. 괴상한 종교에 반감과 불신을 가져, 오지 않은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결론은 서월시에 생존자들은 최소 서른 명 이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서월시의 생존자가 한 명도 없다는 라디오 소리에 헛웃음이 새어 나왔었다.

 

 이 종교 집단의 거처는 좀비의 침입으로부터는 안전한 건 확실했다. 좀비들은 지상과 길거리만 돌아다니며 생존자 -그들에게는 먹이겠지만-를 찾았다. 지하까지 찾을 정도로 지능이 높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종교의 주 거처인 지하 대강당은 좀비가 지상에 있는 유리문 두 개를 열고 고장 난 자동문을 밀어서 연 다음, 지하 계단으로 내려와 방음을 위해 두껍고 무거운 문을 열고 들어오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재민은 그걸 알고 그 종교로 들어갔다. 그 신을 믿어서 들어간 것도, 물건들을 훔치려고 들어간 것도 아니다. 좀비한테 물려 또 다른 사람을 무는, 남에게 피해를 주는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 물려 죽는 것보다 안전한 곳에서 굶어 죽는 게 좋을 것으로 생각하고 그곳으로 들어가 살기 시작했다.

 

 지성과 재민은 그곳에서 만났다. 정확한 첫 만남은 지하 대강당 밖 계단 구석이었다. 지성은 이 종교 집단에 반감을 품고 있었고, 이곳이 종교의 주 거처라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여기 온 목적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보호받기 위해 온 것이 아니었다. 종교 집단의 지도자들은 지성을 거두어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강제로 내쫓지도 않았다. 그냥 거기 있는 사물인 척,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것을 보는 척 지성을 무시했다. 재민은 종종 이동하며 지성을 마주칠 때마다 야위어가는 모습에 동정심을 느꼈다.

 

 재민은 기분이 이상했다. 정말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이렇게까지 동정심을 느낄 수 있다는 걸 실감했다. 언제 굶어 죽고 물어뜯겨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낯선 사람에게 동정심까지. 그것이 재민의 이전의 시대에서 미처 몰랐던 자신이 가장 크게 자극받고 흔들리는 감정이었다.

 

 

-

 지성은 자신이 몇 시간 째 잠에 빠져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눈을 감을 때마다 점점 잠을 자는 시간이 길어지는 것 같았다. 조금만 있으면 영영 잠들 것 같은 기분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뻐근한 몸을 좀 움직였다. 관절이 뚝뚝 거리는 소리가 자신이 좀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다행히 누군가를 물고 싶거나 잡아먹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은 걸 보니, 내가 좀비는 아니구나 하며 안심했다. 계단 쪽을 바라보니 대강당의 두꺼운 문 사이로 은은하게 새어 나오는 빛을 제외하곤 어두컴컴했다. 아마 밤이겠거니 추측한 지성은 누군가를 기다리듯 다시 몸을 웅크렸다.

 

 유일하게 보였던 빛이 사라졌다. 다들 잠들었겠다고 생각한 지성은 다시 눈을 반쯤 감고, 잠들 준비를 했다. 끼익- 두꺼운 문이 내는 소리치곤 높은 소리에 지성은 놀라 고개를 퍼뜩 들다 계단 아래에 모서리에 부딪혀 소리 지를뻔한 것을 참고 부딪힌 곳을 문질렀다. 아야… 지성은 어둠 속에 문을 열고 나온 사람이 자신이 있는 계단 아래로 다가오는 기척이 보여 입술을 깨물고 몸을 더 당겨 구석으로 들어갔다.

 

 어둠 속에서 커지는 소리에 지성은 볼 안쪽을 잘근잘근 씹었다. 아, 건조한 목구멍으로 볼 안쪽 살에서 나온 피가 흘러 들어간다. 그제야 갈증을 느꼈다. 작은 피 한 방울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갈수록 목이 타는 것 같이 건조했다. 물을 안 마신 지도 벌써 얼마나 지났지? 지성은 인상을 찌푸리며 자신이 이곳에 언제부터 있었는지,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있는지 의문을 품었다.

 

 들리던 발소리는 점점 커져 지성의 앞에 멈췄다. 지성은 언제든 대응할 수 있게 두 주먹이 떨릴 정도로 힘을 주었다. 그 사람은 지성에게 무언가를 건네고서는 바로 돌아가 두꺼운 문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지성은 그것을 순순히 받았다. 물? 촉감과 어둠에 적응해 희미하게 보이는 물체는 생수병 같았다. 살짝 흔들어보니 찰랑거리는 소리가 지성을 유혹했다.

 

 힘을 낼 에너지도 없었는데, 방금 주먹이 떨릴 정도로 힘을 주었으니, 새 생수병으로 추정되는 뚜껑을 따는 것도 한참이 걸렸다. 엄지와 검지 사이 여린 살이 쓰라렸다. 손가락을 움직여 쓰라린 부분을 문지르고 병을 코에 가져다 냄새를 맡았다. 아무 향도 나지 않았다. 의심은 잠깐이었다. 며칠을 건조하게 살다가 당장 눈앞에 물 같은 게 있는데. 지성은 확인을 위해 한 모금 마셨다. 분명 한 모금만 먹고 조금 기다리려고 했는데, 기다릴 수가 없었다. 그 한 모금이 더욱 물을 갈망하게 만들어 입술부터 혀와 목구멍을 적시고, 달게 느껴지는 물을 다 마실 것 같아 얼른 목을 축일 정도만 마시고 다시 뚜껑을 닫았다.

 

 급한 욕구를 채우고 나서야 그 사람이 누구인지 의문이 들었다. 실루엣으로는 지성이 확실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럼? 누구지? 의문을 품으며 다시 눈을 감기 전, 물이 있다는 것을 그들이 본다면 위험해질 예감에 지성은 병을 자신의 등 뒤에 두려다, 종이 재질의 무언가가 손에 걸렸다. 지성은 작은 종이를 잡았다. 종이를 손끝으로 천천히 쓸어내렸다. 글씨? 무언가 쓰여있었다. 지금은 어두워 볼 수 없으니 지성의 다음 욕구인 수면욕을 채운 뒤에 보기로 했다.

 

 여러 명이 소란스럽게 말하는 소리와 계단을 올라가는 소리. 지성은 잘 떠지지 않는 눈을 떴다. 당장 종이를 확인했다. 한 번 물이 묻었다가 말랐는지 색이 바랜 분홍색 포스트잇에 검은 볼펜으로 여러 번 그어 적은 글씨. 찢어지지 않은 것이 다행일 정도였다.

 

‘나랑 도망가자.’

 

 종이에 적힌 글씨. 도망은 진작 가고 싶었다. 속셈이 뻔한 이 집단이 영향을 행사할 수 있는 영역에서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여기에 묶여있는 그 이유만 없었으면 근데 이걸 적어 준 사람도 참 웃기다. 누군지 알려줘야 알고 따라 나가지

 

어?

 

 마지막으로 문을 닫고 나온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헐렁한 옷에 가방을 멘, 색이 빠진 분홍 머리. 지성에 손에 들린 포스트잇 색과 똑같았다. 분홍 머리의 남자는 다른 사람이 계단을 다 올라가고 나서도 그 자리에 계속 서서 지성을 바라보았다. 마치 포스트잇의 주인이 자신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남자는 지성에게로 다가와 한참을 말없이 서 있었다. 지성의 대답을 바라기도 하듯. 지성은 눈동자를 굴리며 머리를 좀 굴리고는 계단 뒤에 숨겨둔 물 한 병과 필요한 물품들이 담긴 흙먼지 묻은 백팩을 들어 매고 일어섰다.

 

 그렇게 재민과 지성은 이 집단을 벗어나 다른 곳을 다니며 지옥 같은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좀비와 좀비보다 더 무서운 사람을 피해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집단의 눈을 피해 서월시를 전전했다. 또 얼마나 지났을까. 벌써 떨어져 가는 식량에 이제는 정말 서월시를 떠야겠노라고 재민은 생각했다.

 

 지옥 같은 생활에서도 재민은 한없이 지성에게 다정했다. 재민이 지성을 대하는 장면 하나하나에 분위기 좋은 노래만 배경음악으로 깔면 모든 장면이 로맨스였다. 하지만 이곳은 밤낮으로 좀비의 괴상한 소리와 점점 줄어드는 물품들을 보며 매 순간을 긴장하며 보내는 현실이었다.

 

 가끔 깊게 잠든 지성에게서 잠꼬대를 들을 수 있었다. 돌아가야 하는데와 같은 잠꼬대와 식은땀을 뻘뻘 흘리는 모습에 재민은 힘들어 보이는 지성을 한 번 깨워 얼굴을 쓰다듬고는 지성이 다시 잠들 때까지 등을 토닥여주었다. 그럼 지성은 돌아누운 채 피곤함에 쓸려 잠에 빠질 때까지 눈물을 뚝뚝 흘리곤 했다. 그게 그들의 일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

 새로 옮긴 집은 전에 머물렀던 곳보다는 깔끔했다. 그곳에서 며칠간 버틸 수 있는 물을 발견했고, 아직 유통기한이 지나지 않은 빵을 발견했다. 오랜만에 찾아온 행운이었다. 그 전에 돌아다닌 집은 집에 생필품이 아예 없거나, 있는 경우에는 사람이 살고 있어 찔려 죽지 않게 도망치곤 했다. 가장 멀쩡한 가죽 소파에 둘이 몸을 붙여 누웠다. 재민의 체온에서 말 없는 위로를 느꼈다.

 

 

 

 

 어딘가 분주한 소리, 부스럭거리며 무언가를 가방에 넣는 소리에 재민은 눈을 떴다. 도둑? 아니 생존자? 아니면, 그 집단의 사람들? 재민은 자는 척 몸을 돌려 눈을 흐릿하게 뜬 채 현관을 바라봤다. 여기서 나갈 곳은 현관밖에 없으니까.

 

“지성아, 어디가?”

“어.”

 

 재민의 시야에 분주하게 움직이는 지성이 들어왔다. 일단 저를 해칠 사람이 아닌 것을 확인한 재민은 그 이유는 꼭 들어야겠다 하고 몸을 일으켜 소파에 앉아 지성을 응시했다. 그냥 바람도 쐬고, 식량도 구해보려고요. 이 시간에? 커튼을 쳐도 들어오는 빛이 전혀 없는 것을 보면 지금이 깜깜한 밤이라는 것은 지성도 알고 있을 터였다. 더군다나 혼자 남겨지는 걸 극도로 꺼리던 지성이가? 재민은 지성이 스스로 진실을 말하기를 기다렸다. 너무 냉하게 굴었나? 사과할까? 싶을 정도로 침묵의 시간이 길어지다 끝내 지성이 입을 열었다.

 

“저는 그 망했으면 좋겠는 종교 집단으로 다시 돌아가야 해요.”

“그게 무슨 말이야. 지성아, 거기서 힘들게 나왔잖아. 거긴 이익만 찾는 사람들뿐인데, 왜. 다시 가려고 하는 거야?”

 

 아 실수했다. 그 종교 이야기에 말이 거세게 나갔다. 지성이 나가게 두면 안 된다고 직감한 재민은 최대한 자연스럽게 지성에게 다가가 어깨를 쓰다듬었다. 가방을 잡아 내려놓고 지성을 소파 쪽으로 이끌었다. 왜, 지성아 거기에 뭐 두고 온 거 있어서 그래? 형이 갖다 줄게. 응? 진심이 담긴 위로였다. 재민은 한 번도 지성에게 거짓을 말한 적 없었다. 그리고 얘를 혼자 두기에는 불안했다. 하지만, 정말 그 상황에 놓인다면 나재민이 더 불안해할 것이었다.

 

“형, 텅 빈 위로 좀 그만해요.”

 

 큰 손으로 얼굴을 덮으며 지성이 뱉은 말에 재민의 미간이 구겨졌다. 표정을 관리할 수가 없었다. 내가 준 친절이 텅 빈 위로로 느껴졌구나. 코끝이 찡해졌다. 지성이 놀라 안절부절못했다. 눈물에 약한 건 나도 그렇지만, 지성이도 눈물에 약했구나. 처음 알았네. 지성이 어설프게 재민을 껴안았다. 한 번 흐른 눈물은 마음대로 멈출 수 없었다. 지성은 볼 안쪽을 한 번 깨물고는 재민에게 천천히 진실을 말해주었다.

 

 여동생이 있다고 한다. 자기보다 6살 어린, 이 사태가 터지고 나서 계속 찾고 있었는데 누군가 그 아이가 종교 집단에 있다고 했다. 집단 사람들에게 찾아갔더니 이제 사람은 모집하지 않는다고 말해서 그럼 잠깐만 볼 수 있게 해달라고 빌었지만, 확실하지도 않은데 네가 해코지를 할지 어떻게 아느냐고 하면서 거절했다고 한다. 지성은 이 말을 하면서 재민을 더 세게 껴안았다. 재민은 지성의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천천히 등을 두들겨주었다.

 

 그때부터 계단 살이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명의 남자가 와서 제안을 하나 해왔다. 요즘 세상에는 신뢰가 기반인 거래가 필수라면서. 여기도 요즘 물자가 점점 떨어져서 정리가 좀 필요하다고, 여기서 사람 한 명만 밖으로 데리고 빠지고 다시 오면, 여동생을 만나게 해주겠다고, 아니면 그냥 둘이 같이 다닐 수 있게 동생을 돌려주겠다며 낄낄 웃어대었다. 명백한 조롱이었지만, 여동생을 만나겠다는 생각 하나로 계단에서 죽치며 데리고 빠질 사람을 찾았다. 그 사람이

 

“나였구나.”

 

 형은 이런 상황에서도 너무 다정했어요. 지금도 그렇고요 제가 언제 형을 버리고 갈지도 모르는데 끝까지 끝까지 다정하기만 하고. 저는 맨날 그런 형을 애써 무시하면서 돌아갈 생각만 했고요. 재민의 어깨에 얼굴을 묻은 지성은 그동안의 진실과 눈물을 함께 토해냈다.

 

“저는 그러니까, 돌아가야 해요.”

“지성아, 그 있잖아

 

 거기에 여자애는 단 한 명도 없었어. 지성은 재민이 가방에서 꺼내 건넨 사진 한 장을 받았다. 그곳에서 찍은 사진이야. 재민의 말대로 어린 여자애는 단 한 명도 없었다. 힘없이 사진을 떨어뜨렸다. 서로를 꽉 껴안았다. 따듯한 온기 위로 떨어지는 눈물과 말 없는 위로 후 고개를 들어 서로를 마주했다. 건조하고 짧은 입맞춤이었다. 수분이 없는 버석한 입술들이 부딪혔다. 건조하고 텁텁한 키스는 이상하게도 따듯하게 느껴졌다. 서로의 갈증을 축였다. 위로, 안정, 의지를 담은 행위는 서로를 꼭 묶어주었다.

 

 

 

 

-

 좀비를 계속 밀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좀비들의 다듬어지지 않은 손이 창문을 긁는 소리가 괴성만큼 소름 돋았다. 점점 터널의 끝이 보였다. 아까와는 다른, 처음부터 끝까지 어두운 결말이 아닌 밝은 터널의 끝. 터널 끝에서 들어오는 햇살이 차를 반겨주는 듯, 조금 전 겪은 상황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둘은 입술을 앙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끝에 다다를수록 긴장감은 고조되어 숨도 참게 했다.

 

 

 계속 밀어내서 좀비들은 많이 쓰러졌고, 차로 바짝 붙는 좀비들은 없어졌다. 저 멀리서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지만, 지금 이대로면 무사히 터널을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었다. 차의 앞 좌석에 빛이 막 닿았을 때, 덜컹, 덜컹, 덜컹덜컹. 무언가에 걸린 듯 차가 앞으로 나아가질 않았다. 재민은 안 그래도 큰 눈이 더 커지며 머릿속이 하얘졌다. 페달을 세게 밟아도 바퀴가 헛도는 소리에 머리가 울렸다. 재민은 백미러에 비친 어둠 속에서 밀려오는 좀비들이 보였다. 쭈뼛 소름이 돋았다. 지성도 어쩔 줄 몰라하더니 큰 손에 얼굴을 묻었다. 어떤 상황이든 회피하고 싶을 때 지성이 하는 행동이었다.

 

 그래, 얼굴을 가려 가까운 어둠만 보며 상황을 회피해선 안 되었다. 지성이는 몰라도, 나는 그러면 안 돼. 지성이 대신, 상황을 직면하고, 위험하고 무리해서라도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여길 나가려면.

 

“지성아, 기도해줘.”

 

 차 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와 재민의 말에 놀라 고개를 들었다. 재민이 차에서 내려 계속 헛돌던 뒷바퀴 쪽으로 갔다. 지성은 형을 계속 불렀다. 왜 그러냐고, 왜, 왜. 지성도 차에서 내리려고 했지만, 아무리 손잡이를 당겨도 열리지 않았다. 왜 지금. 고장이야. 또 사람을 잃고 싶지 않았다. 그것도 눈앞에서는 더더욱 잃고 싶지 않았다.

 

 차에서 내린 재민은 뒷바퀴에 형체를 알기 힘든 것이 껴있는 것을 보고는 눈을 질끈 감았다. 고개를 돌려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참기 힘든 악취, 어둠 속에서 괴성을 지르며 서서히 몰려오는 좀비들, 차 안에서 울부짖으며 창문을 두들기는 지성이까지. 모든 것이 꿈이라고 믿고 싶었다. 재민은 뒷바퀴로 손을 넣어 잡히는 것을 바깥으로 세게 잡아당겼다. 질퍽이는 소리. 그래, 한 번에 빠지면 영화겠지. 재민은 뒷바퀴 옆에 발을 올리고 다시 잡아당겼다. 와 재민은 자신이 잡고 있던 것이 무엇인지 깨닫자 헛구역질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형!”

 

 지성의 외침이 없었다면 머리가 핑핑 도는 상황에서 좀비가 오는 것도 몰랐을 것이다. 정신을 차린 재민은 얼른 잡고 있던 것을 몰려오는 좀비 떼에게 던지고 다시 차에 올라타 페달을 밟았고, 차는 무사히 출발해 정말 어두운 터널 속을 빠져나왔다.

 

 차가 완전히 터널을 빠져나오고 도로를 따라 달렸다. 메아리치던 괴성이 잦아지다 사라졌다. 둘은 동시에 참았던 숨을 뱉었다. 그러고는 재민은 웃음이 터졌다. 이 모든 상황이 어이없어 웃겼다. 자꾸 고개를 숙이며 웃으려는 재민 때문에 지성은 아 형! 제발 고개 들어요! 앞 보고 운전해요! 하며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다.

 

 재민의 웃음이 잦아들자 지성은 재민을 힐끔 보더니 안심하고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아마 재민을 위해, 재민에게 하는 기도일 것이다. 꾹 감은 눈, 무언가를 중얼거리는 입술 꼭 모은 두 손. 그런 예쁜 모습에 재민은 눈을 뗄 수 없었다. 앗. 지성과 눈이 마주쳐 급하게 정면을 보는 척했지만, 지성은 기도하는데 부끄럽게 왜 보냐는 둥 볼을 부풀리고 있었다.

 

 

 

 

 

-

“형, 우리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요?”

“그거 전에 한 번 말했지 않아?”

 

 그래요? 기억이 잘. 지성은 머쓱하게 웃으며 침대 위에 풀썩 누웠다. 재민도 지성을 따라 침대에 눕고는 지성을 꽉 껴안았다. 먼지가 풀풀 날려 연신 재채기를 해도 괜찮았다. 이제는 서로의 온기만으로도 애정을 확인했다. 재민은 이곳이 어디든, 어디로 떠나든, 옆에 저를 따라 같이 움직이는 지성이 있다면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여전히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있었으며, 버석한 입맞춤, 서로를 껴안는 행위로 애정과 위로를 주고받았다.

 ​/ 사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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