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아파. 지성아.”
지성의 손톱이 재민의 손등에 작은 생채기를 만들었다. 지성의 손에 너무 많은 힘이 들어간 탓이었다. 작은 자국 위로 피가 맺혔다.
“형. 밴드, 밴드 어디 있지? 어떡해요. 약 발라야 하는데…….”
당황한 지성이 손을 허공에 휘젓던 것도 잠시, 놀란 탓에 몸이 그대로 굳었다. 애매하게 팔을 든 웃긴 자세 그대로 창밖만 멍하니 바라보았다. 괴기한 비명을 지르며 달려온 두 마리의 좀비가 큰 소리를 내며 차의 앞판에 부딪혔다. 손톱으로 차 유리를 긁는 소리가 터널을 가득 채웠다. 눈을 감고, 짧게 심호흡을 두 번. 재민이 안전벨트를 풀으려 손을 움직였다. 떨리는 손 때문에 벨트가 잘 풀리지 않았다.
“지성아, 차에 있어. 여차하면 후진해서 그냥 나가.”
“그럼 형은요”
안전벨트를 풀기 위해 움직이는 재민의 손을 지성이 낚아챘다. 놓지 않겠다는 듯이 지성이 재민의 손을 힘주어 잡았다. 말을 하는 중간중간, 고개가 좌우로 흔들렸다. 자의적으로 움직인 것은 아니었다. 본심이 그대로 나왔다.
“형, 나갈 거예요?”
“...”
“아니, 아니야. 같이 있어요. 나가지 마”
결국 지성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제대로 된 사고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절체절명의 순간. 좀비 몇 마리가 피떡이 된 얼굴을 창에 문댔다. 터널 끝에는 당장이라도 움직일 것만 같은 덩어리들이 보였다.
헛웃음이나 실실 나왔다. 신을 욕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더라. 굳이 기억하려 하지 않아도 생생하게 떠올랐다.
9월 4일. 그날이 이 사건의 시발점이다.
*
-오늘 새벽 2시경. 거리의 CCTV는 이상한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기이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 곧이어 서로를 물어뜯기 시작합니다. 인근 시민의 신고에 출동한 경찰들. 하지만 경찰에게도 이성을 잃고 달려듭니다. 테이저건을 쏴 보지만 멀쩡히 몸을 움직입니다. 현장의 경찰들은 경고 후 다리에 총을 발포합니다. 그럼에도 고통을 못 느끼는 듯 달려드는 사람들. 결국 현장의 경찰들은 이것들을 사람이 아니라고 여겨, 머리에 총을 발포합니다. 머리에 총을 맞자 움직임을 멈추는 저것들. 도대체 정체가 무엇일까요? CNT 이나윤 기자 연결해보겠습니다. 이나윤 기자?
-네. CNT 이나윤 기자입니다. 저는 오늘 새벽에 있던 난동이 일어난 위치에 와있습니다. 바로 저곳. 서월시 동래구 56번지 동래제약회사 건물 앞 가로등 밑에서 사건이 일어났는데요, 오늘 새벽 2시경. 문제의 사람들은 동래 제약 연구원 31세 남성 윤 모씨와, 37세 남성 이 모씨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경찰은 '현장에서 총을 발포한 것에는 어쩔 수가 없었다.' 라고 말을 전했습니다. 당시 현장에 출동했었던 경찰 한 분을 인터뷰해 보겠습니다.
-진짜 사람의 움직임이 아니었어요. 뭔가 되게 엄청... 굼뜬 느낌? 눈에 초점도 없었고 서로 물어뜯은 자국이 있긴 했지만 심하진 않았어요. 그냥 가로등 밑을 서성거리고 있더라고요. 근데 저희를 보자마자 엄청 빨라지더니 막 달려드는 거예요. 그래서 경고 후 테이저건을 쐈죠. 그런데도 잘만 움직이더라고요. 그래서 다리에 발포했죠. 사람이라면 총 맞으면 아파해야 하잖아요? 근데 고통을 못 느끼는 것처럼 개의치 않고 달려들더라고요. 덕분에 저도 여기 조금 물렸어요. 하하. 뭐 아무튼 결국 저희는 머리에 사격을 결정했고......./
어젯밤에 뉴스를 보다가 잤던가.
제대로 떠지지도 않는 눈을 붙들고 재민은 TV의 전원부터 켰다. 딱딱한 목소리로 인터뷰를 하는 뉴스의 모습이 화면이 나왔다. 별 흥미 없는 내용에 채널을 돌렸다. 아는형,... 뭐시기? 보지도 않을 예능을 틀었다. 고3이라는 나이 탓에 사실상 TV는 장식이었다. 이런 아침 시간 혹은 잠자기 전이 아니면 틀지도 않았다. 자취를 하는 탓에 적적한 아침을 달랠 것이 필요했기에 매일같이 TV를 트는 게 재민의 습관이었다.
학교 갈 준비를 마치고 무심결에 달력을 보자 날짜는 9월 4일. 곧 수시 모집이고 자소서도 수정해야 하고 또.... 해야 할 일을 나열하자 머리가 아파왔다.
*
재민의 교실은 4층의 제일 안쪽에 있었다. 여름 방학 전까지만 해도 나름 밝던 분위기의 교실이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활기를 잃어 어두워져 갔다. 선생님들도 "니네 고삼이야" 를 입에 달고 다니며 학생들의 멘탈을 무너트렸다. 교실에선 4교시 수업이 한창 이었다. 솔직하게 말해서 졸렸다. 잠이 와서 집중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감기는 눈을 억지로 부릅떠 보지만
“저거 뭐야?”
잠깐 졸았다. 여러 명이 동시에 말하는 목소리에 잠이 깼다. 창가에 앉은 아이들이 수군거렸다. 선생님이 교탁을 두 번 두드리며 주의를 주었지만 선생님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들은 창문에 얼굴을 들이대고 밖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재민도 궁금증에 고개를 조금 내밀어 창밖을 보자 짐승 떼 같이 굼뜬 움직임을 가진 형체들이 보였다. 동시에 모든 학생들의 핸드폰에서 삐- 하는 소리가 들렸다. 주머니 속 핸드폰을 꺼내 확인하니 재난 문자 팝업창이 띄워져 있었다.
-[서월시청]
오늘(9/4) 오전 10시경.
알 수 없는 감염성 뇌 질환 바이러스 발생.
상황을 파악 중이며, 안전에 유의하십시오.
소란스러워진 교실. 운동장의 검은 것들이 학교로 들어오고 있었다.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아이들이 선생님의 말도 다 무시하고 복도로 뛰쳐나갔다.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비명이 난무하고 창문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귀에는 이명인지 뭔지 삐 하는 소리만 가득했다. 멍했다. 정신이 어디론가 날아간 것만 같았다.
점차 정신이 돌아오고 천천히 시끄러운 상황의 소리들이 들려왔다. 뛰쳐나가는 아이들에게 떠밀린 탓 인지 복도 한가운데 재민은 서 있었다. 반대편 복도 끝에서부터 비명소리가 생경하게 귀에 꽂혔다.
그것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보이는 문을 아무거나 열고 들어가자 교무실이다. 문을 닫고 문에 기대어 심호흡을 몇 번 했다. 당황했을 때 나오는 습관이었다.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3층의 시끄럽던 소리는 금세 4층을 물들였다.
한참을 가만 앉아만 있었다. 점차 힘이 들어오는 다리에 재민이 바닥을 짚으며 일어났다. 잠그지 않은 문을 걸어 잠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핸드폰을 꺼내 보지만 역시나 전파는 터지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보자 골프 가방이 눈에 띄었다. 과학 선생님의 취미는 골프였다. 종종 학교가 끝나고 교장 선생님과 골프를 치러 가는 모습이 목격되곤 했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취미라고 생각했지만, 오늘만큼은 그 취미에 감사했다. 골프 가방에서 가장 튼튼하고 두꺼워 보이는 골프채를 꺼내 손에 꽉 쥐었다. 문밖의 시끄럽던 소리는 금세 4층 전체를 물들였다. 그 어느 층도 안전하지 않았다. 딱히 할 일도 없어 교무실을 더 둘러보았다. 쓸만한 것은 손전등뿐 이었다. 배에서 꼬르륵하는 소리가 났다. 4교시. 점심시간을 앞둔 시간. 바로 그때 이 사달이 벌어졌으니 밥은 무슨 물 한 모금도 먹지 못하였다. 아침을 잘 챙겨 먹지 않는 성격 탓에 하루종일 먹은 거라곤 식빵 한 쪽이 다였다. 비록 음식을 먹지 못하였어도 목숨을 부지한 게 지금으로선 천운이나 다름없었다. 불편한 하복 와이셔츠를 풀었다. 안에 입고 온 반팔티 차림이 되자 움직임이 한결 편해졌다. 셔츠를 대충 말아 머리맡에 두고 누웠다.
시계를 보자 3시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배가 고파왔다. 주변이 팽팽 돌았다. 혼자서 중력을 2배로 받는 기분. 밥 못 먹고 아사하나, 좀비한테 물려 뒤지나 거기서 거기일 것 같아 교무실을 나가기로 했다. 일단 교무실을 떠나자. 떠나서 2층의 매점으로 가, 음식을 챙겨 3층의 음악실로 가자. 음악실은 벽도 방음이고, 문도 튼튼했기에 내린 결정이었다. 체육 선생님 자리에 걸려있는 더플백을 들었다. 안에는 핸드크림, 지갑, 차 키가 들어있었다. 딱히 필요한 것들은 아니었다. 다 빼내고 차 키만 챙겼다. 가방 안에 손전등을 넣고 어깨에 걸쳐 매었다. 문을 열기 직전 재민이 다시 심호흡하였다. 깊게 두어 번 정도 숨을 내쉬던 재민이 골프채를 손에 꽉 쥐고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대충 숫자를 세자 열다섯 마리 정도. 기왕이면 좀비와 맞붙지 않고 조용히 가는 게 이득이었다.
계단까지는 그닥 멀지 않았다. 몸을 숙이고 조심스럽게 걸어갔다. 긴장감에 침을 꿀꺽 삼켰다. 할 수 있다. 무한대로 자기 암시했다. 모습들이 너무 기괴했다. 팔 살점이 다 떨어져 뼈가 보이고 피부가 벗겨져 지방 조직이 다 보였다. 윽. 올라오는 토기를 억지로 짓누르며 느릿하게 움직였다. 계단을 코앞에 둔 그때, 재민을 본 좀비 한 마리가 달려들었다. 재민이 골프채로 머리를 가격하자, 퍼석 하는 무언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좀비가 바닥으로 쓰러졌다. 바닥에서 꿈틀거리면서도 괴기한 소리를 계속해서 내질렀다. 그 소리에 복도에 있는 좀비들의 시선이 재민에게로 쏠렸다.
아 씨발 좆됐다. 닥치고 교무실에 있을걸. 몰려오는 좀비들은 위협적이었다. 살짝 움츠러든 것도 잠시 다시 골프채를 휘둘러 하나둘 쓰러트려 나갔다. 골프채 몇 번 휘둘렀다고 목덜미에서 땀이 났다. 평소에 운동 좀 할걸. 벌써부터 체력이 부족한 게 느껴졌다. 재민을 향해 달려오는 4층 복도의 마지막 좀비. 재민과 눈이 마주쳤다. 얼굴을 보자 재민의 짝이었다. 순간 골프채를 휘두르던 팔이 멈췄다. 좀비가 재민을 붙잡기 직전 재민의 코앞에서 좀비의 목이 날아갔다. 목이 잘린 채 바닥으로 쓰러진 좀비는 바닥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쓰러진 좀비 뒤, 서 있는 학생의 명찰에는 지성이라는 이름이 쓰여 있다.
“괜찮으세요?”
지성 역시 많은 좀비들을 해치운 것인지 칼과 교복에 피와 이상한 액체들이 잔뜩 묻어있다. 손목의 아대도 피로 물들어 있다. 입만 열어둔 채 아무 말도 못 하는 재민을 지성이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교장실에 칼. 이거 진짜더라구요”
하하. 멋쩍게 웃는 것도 덧붙였다. 사람의 얼굴을 보자 긴장이 풀렸다. 털썩 주저앉자 지성이 당황하며 재민을 일으켜 세우려 노력했다. 재민이 좀비의 진득한 액체가 잔뜩 묻은 손을 덜덜 떨었다. 바지 허벅지에 피를 마구 닦아내는 꼴이 애처롭다. 재민의 옆에 굴러가는 짝꿍의 머리통. 우웩. 결국 재민이 몰려오는 토기를 감추지 못하고 바닥에 토했다. 좀비의 사체에서 나는 냄새와 뒤엉켜 더 고약한 냄새가 났다.
한번 토를 하고 나자 조금 정신이 돌아왔다. 4층에 좀비가 한 마리도 없는 것은 아니었기에 일단 이 자리를 뜨자는 생각에 재민은 지성을 따라갔다.
지성을 따라 도착한 곳은 음악실. 이미 지성이 자신의 홈베이스로 낙인 찍어논 곳 이자 재민이 목표로 두었던 곳이었다. 음악실에는 약간의 음식이 있었다. 저희 말고 생존자가 또 있었나 봐요.
“매점에 음식은 이거밖에….”
지성의 말 대로 남아있는 음식의 양은 매우 적었다. 아마 며칠 버티지 못할 듯했다. 배가 고팠던 재민은 그중에서 매점 빵을 한 개 꺼내먹었다. 지성도 딱히 싫은 소리 하지 않았다. 지성의 명찰 색은 2학년. 재민은 하복 와이셔츠를 버리고 온 탓에 명찰이 보이지 않았다. 재민은 입에 빵을 욱여넣으며 지성에게 물었다.
“몇 살이야? 1학년?”
“네….”
재민과 지성은 서로 나이 얘기를 시작으로 좀비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에 뭘 하고 있었는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등등을 얘기하였다. 사람과 대화를 하지 않은지 몇 시간 지나지도 않았는데, 위기 속에서 있었던 탓 인지 오랜만에 사람과 대화하는 기분이 들었다. 긴박한 상황에선 감정이 배로 움직인다던가. 둘은 뭔지 모를 친밀감에 급속도로 친해졌다.
지성의 말을 빌려 그때의 상황을 설명하자면, 좀비 사건이 터졌을 때 지성은 1층에 있었다. 심부름을 하기 위해 1층의 본부 교무실 앞 복도를 걷고 있는데 후문으로 좀비 하나가 들어오더니 보건 선생님을 그대로 물었다. 눈앞에 보이는 문을 열고 들어가자 교장실이었고, 벽에 전시되어있는 칼이 눈에 띄었다. 배가 고팠기에 밖으로 나가보자는 생각에 무작정 2층으로 갔다. 이미 매점은 털려있었고 몇 안 남아있는 음식을 챙겨 음악실로 갔다. ㅡ음악실을 점 찍은 건 재민과 똑같은 이유에서였다.ㅡ 혹시 옥상으로 가면 구조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4층을 지나가다 위기를 맞닥뜨린 재민을 발견한 것이었다.
조용히 교무실에서 버틴 재민과 다르게 지성은 학교를 많이 돌아다녔다.
재민도 지금까지 자신이 버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대화를 하자 시간이 금방 갔다. 지성이 자신이 알아낸 팁 몇 개를 알려주었다. 목을 노려야 조용히 죽는다는 것이었다. 머릿속에 잘 쑤셔 넣어 기억했다. 금세 저녁이 되고 몇 남지 않은 식량을 꺼내 먹었다.
*
이것이 좀비 사태가 벌어진 날의 상황. 재민과 지성은 음악실에서 음식을 나눠 먹어가며 3일을 버텼다. 특별한 사건 없이 조용히 음악실 안에 틀어박혀 있었다. 정신병이 올 만큼 할 짓이 없었다. 그나마 자취로 심심함을 단련해서인지 두 명인 덕인지 죽을 만큼은 아니었다. 2일째 되던 날 누군가가 음악실 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어줄 수는 없었다. 좀비가 갑자기 들이닥칠 수도 있었고, 식량도 부족했다. 밖에서 절규하듯 살려달라 하던 소리는 좀비의 울음소리로 변해갔다. 지성은 문 앞에 무릎 꿇고 앉아 슬퍼했다.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미안해요, 미안. 재민도 그런 지성을 달래주었다.
이곳이 지옥임이 실감 났다. 살갗을 파고들어 뼛속 깊이 새겨졌다. 우리는 지금 지옥에 와 있다고.
*
“벌써 7일이네”
“내일모레쯤? 되면 다 떨어지겠어요. 학교를 나가는 건 너무 위험하려나….”
“그래도 나가보는 게 좋지 않을까?”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오늘 오후에 나가봐요.”
짧은 계획을 세웠다. 언제 틀어질지도 모르는 계획을. 재민이 들고 온 가방 속에는 체육 선생님의 차 키가 있었다. 3층에서 로비로 내려간다. 체육 선생님의 차를 탄다. 학교를 나간다. 그럼 나가서는? 몰라. 이 지옥의 결말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해피 엔딩을 꿈꿨다.
창문 밖을 바라보며 차 키의 버튼을 이리저리 눌렀다. 자물쇠가 그려진 모양을 하나 누르자, 차 하나의 전조등이 켜졌다. 파란색 소형 자동차였다. 저건가 봐. 차에서 소리가 난 탓인지 좀비들이 차에 다닥다닥 붙었다.
“윽. 형 차 문은 미리 열어두는 게 좋겠어요.”
“으응…. 나도 동의해.”
조금씩 계획들이 디테일을 갖춰갔다. 가방을 쌌다. 솔직히 넣을 것도 별로 없었다. 체육 선생님의 차 키, 손전등, 남은 식량 조금과 미지근한 물. 재민이 들고 온 남의 가방에 구겨 넣자 다 들어갔다. 가방을 메는 건 재민이 하기로 했다. 미리 차 문을 열었다. 차 키의 버튼을 누르자 전조등이 켜졌다. 당연하게도 둘 다 차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그나마 카트라이더 게임이라도 해본 지성이 차를 운전하기로 했다.
“이게 열린 건가?”
“음…. 잘 모르겠어요”
미리 차 문을 열어두기로 한 둘이지만 둘 다 뭐가 차 문이 열린 건지 몰랐다. 버튼을 누를 때마다 불이 켜지는 차를 구별하기 어려웠다.
“뭐 열린 거겠지”
재민의 말을 선두로 둘은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오히려 이곳보다 밖이 더 위험할 수도 있지만, 희망을 얻기 위해 둘은 음악실을 떠났다. 재민이 먼저 음악실 문을 조심히 열었다. 최대한 소리를 죽이고 문을 열었다. 아직 재민의 인기척을 느끼지 못한 좀비들이 복도를 어기적거리고 있었다. 몸을 숙여 계단까지는 조심히 왔다. 지성도 어느샌가 따라와 재민의 뒤에 서 있었다. 복도와는 다르게 계단에는 좀비가 몇 마리 없었다, 1층을 향해 걸었다.
“와”
좀비가 다 어디에 가 있나 했는데 여기에 모여있었다. 저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진짜 득실득실했다. 좀비들의 모습이 마치 바퀴벌레의 소굴을 열었을 때 같다. 꾸물거리는 고약한 것이 가득했다. 조심히 발을 떼자 재민과 가장 가까이 있던 좀비가 달려들었다. 목을 노린다 뭐 이딴거 다 기억도 나지 않았다. 앞엣것을 치워 버려야겠다는 생각만이 들었다. 골프채를 높게 휘둘러 어깨 부분을 후려치자 좀비가 울음소리를 내며 옆으로 쓰러졌다. 목숨도 참 질기다. 그렇게 맞고도 다시 어기적거리며 일어나 재민에게 달려들었다. 머리나 목을 노려보지만, 자꾸 헛손질했다. 지성도 한쪽에서 마구 베어가며 좀비를 해치웠다.
“형, 뛰어요!”
모두 해치우기에는 무리였기에 일단 차에 타고 나가기로 했다. 좀비 가득한 1층 로비를 가로질러 뛰었다. 등에 벌레가 기어가는 것 같다. 이상한 기분 다 무시하고 앞만 보고 뛰었다. 주차장으로 달려가 차 앞까지 도착했다. 문 손잡이를 당겨보지만 열리지 않았다. 차를 억지로 열려 하자 경고음이 마구 났다. 운동장과 주차장의 좀비들도 둘을 향해 달려왔다.
"형! 차 키"
재민이 가방 속 차 키의 버튼을 다시 눌렀다. 삑 하며 전조등이 켜지고 그제서야 경고음도 멈췄다. 차 문이 열리고 둘은 차에 탔다. 재민을 향해 좀비가 손을 뻗었다. 세게 차 문을 닫지만, 좀비의 팔이 끼여 문이 닫히지 않았다. 발로 마구 차자 뼈가 부러지는 느낌과 함께 좀비가 나가떨어졌다.
"지성아, 빨리!”
시동이 켜지고 차가 출발했다. 차 앞 유리에 좀비가 다닥다닥 달라붙어 앞이 보이지도 않았다. 일단 액셀을 밟았다. 빠른 속도로 차가 움직이자 붙어있던 좀비들도 떨어졌다. 차 바퀴 밑으로 무언가 깔려 으스러지는 느낌이 났다. 달리는 소형 자동차를 따라 좀비들이 마구 뛰어왔다. 따라오는 좀비 떼가 피리 부는 사나이를 따라오는 쥐 떼 같다.
“와, 저희 진짜 죽을 뻔했어요.”
정문을 가로질러 재민이 매일 같이 지나던 언덕을 내려갔다. 마트가 하나 보였지만 들릴 여유는 없었다. 아직 좀비 몇 마리가 끈질기게 둘을 따라오고 있었기에 움직임을 멈출 수 없었다. 한참을 달렸다. 재민과 지성을 따라오던 좀비 떼도 떨어져 나갔다.
“근데 지성아 너 운전 진짜 못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승차감이 구렸다. 지성도 같은 생각인지 표정이 구렸다.
"형, 토 할 거 같아요."
"운전 내가 할까?"
공터로 가 자리를 교체했다. 재민도 딱히 운전을 잘하는 편은 아니었다. 중학교 3학년 때 범퍼카 이후로 운전을 해본 적이 없었지만, 지성의 운전 실력보다는 확실히 나았다.
어디로 가지. 목적지는 딱히 없지만 움직임을 멈추지 못했다. 계속해서 달렸다. 대각선 앞쪽에 피 칠갑 된 해-피 마트라는 간판이 재민과 지성을 반겼다. 식량이 부족했기에 뭐라도 챙기자는 생각에 차에서 내렸다. 다행히도 좀비는 몇 마리 없었다. 거리에 느릿하게 걸어 다니는 두 마리를 해치우자 남아있는 것은 없었다. 안은 이미 난장판이었다. 가판대는 넘어져 있고 통조림이나 캔 종류는 누가 급히 휩쓸어 간 듯 바닥에 마구 뒤엉켜 있었다. 오래 먹을 수 있는 음식 종류는 몇 개 없었다. 학교에서 이상하게 시간을 오래 때운 탓이었다. 아쉽지만 남은 음식을 쓸어 담고 정문을 나섰다. 벌써부터 노을이 지고 있었다. 오후부터 학교를 나서 좀비를 해치우고 한참을 운전해 왔으니 당연했다.
*
마트 근처, 인력사무소에서 하룻밤을 보낸 둘은 또다시 이동하기 위해 움직였다. 1층 정문을 나와 아무 곳에다 대충 주차해둔 차를 찾기 위해 사거리로 걸었다.
도난이라도 당한 건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찾을 수가 없다. 아쉬운 마음을 않고 사거리 근처의 잡화점으로 들어갔다. 깨진 유리가 바닥에 가득하고 진열장도 다 쓰러져 있다. 뭔가 쓸만한 게 있을까 싶어 서랍들 마구 뒤지자 재민의 팔뚝 길이 정도인 라디오가 하나 보였다. 크기가 너무 컸기에 들고 다닐 수는 없었다. 자리 잡고 앉아 다이얼을 돌려 주파수를 맞췄다. 90을 조금 넘긴 91.1 정도의 주파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옛날식 라디오라 주파수를 확실하게 맞출 수 없기에 목소리가 드문드문 끊겼다.
-.....구, 부산......대전, 광주.....천, 서월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폐쇄된 지역은 대구........고양...전.......인천, 서월입니다.
끊겨오는 소리 속 선명하게 들리는 문장. 폐쇄된 지역은 서월입니다. 뭐가 어쩌고 저째? 재민과 지성이 있는 지역은 서월. 서월이 폐쇄되었다는 소리에 볼륨을 키우고 귀를 기울였다. 똑같은 말만 반복되는 안내방송이 계속되었다.
- 원인을 알 수 없는 뇌 질환 바이러스 감염자가 과도하게 많거나, 더 이상 생존자가 없다고 판단되는 지역을 폐쇄하였습니다. 폐쇄된 지역에 해당하지 않는 생존자분들은 각 지역에 배치되어있는 정부 총괄의 캠프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더 이상의 재난이 일어나지 않도록, 저희 정부는 힘쓰겠습니다.
뚝.
재민과 지성은 거의 동시에 서로를 쳐다보았다. 동그랗게 눈이 커져서 멀뚱히 서로만 바라보았다.
"형 저희 어떡해요?"
"그러게. 서월을 떠나야지."
차를 도난당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나. 차도 없이 뚜벅이 신세이다. 걸어가기엔 너무나도 먼 거리. 살기 위해 서월을 나가야만 했다. 이 안에선 구조를 받을 수도 없다. 발바닥이 아려올 때까지 계속 걸었다. 간간히 만나는 좀비는 이제 식은 죽 먹기다. 가볍게 골프채를 휘둘러 쓰러트렸다.
이 지옥은 강철로 된 얼음 같다. 지옥 불같은 뜨거움 속에서 열기를 식히기 위해 계속해 움직였다. 지옥의 끝은 어디일까. 정녕 죽음이 끝인가. 믿기 싫은 현실을 부정해도 변하는 건 없다. 얼음 같은 희망은 차게 식어갔다.
*
물론 거리 곳곳에 버려진 차들은 많았다. 아쉽게도 차 키가 없었다. 움직이지 않은 자동차에 올라타서 할 짓은 없었기에, 서월의 끝을 향해 걸었다. 차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한탄이 늘었다. 온몸이 땀으로 끈적했다. 며칠째 씻지 못해 찝찝했다.
이틀 정도를 계속해 걸었다. 길을 걷다 좀비를 몇 마리 만나기도 하고 생존자와 다툼이 오가기도 했다. 마트에서 식량을 훔치기도, 반대로 식량이 도난당하기도 했다 한참을 걷다가, 머리맡의 표지판을 보니 동래 사거리라는 글자가 보였다. 여기가 어디지? 지도도 없는 둘이기에 어디로 가야 서월을 나갈 수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조금 더 걷자 간판이 다 나가떨어진 동래제약회사라는 건물이 보였다. 쇠사슬로 잠긴 유리로 된 문에 좀비가 다닥다닥 붙어있다. 금방이라도 깨질 듯 위태롭다.
"저, 저거"
큰 소리와 함께 유리가 깨졌다. 좀비 떼가 우거지로 나왔다. 재민과 지성을 향해 깨진 유리를 밟고 달려왔다. 피범벅이 된 얼굴들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다리를 저는 걸음이지만 속도는 빨랐다. 금세 재민과 지성을 거의 따라잡았다. 허공을 휘젓는 손들의 목표는 둘이다. 느리게 뒷걸음질 치던 것도 잠시. 따라붙은 좀비들을 해치웠다. 머리가 다 터져 물컹거리는 이상한 게 골프채에 엉겼다. 윽. 끔찍했다. 더러운 기분을 억지로 잠재웠다. 팔꿈치 너머로 소름이 돋았다. 이마 위로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무리 진 좀비들을 아무리 해치워도 수가 줄어들지 않았다. 지성의 움직임도 느려졌다.
다급히 옆 건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몸으로 문을 잡고 있지만 세게 문을 치는 움직임에 재민의 몸이 비틀거린다. 철로 된 문임에도 불구하고 흔들거리는 꼴이 곧 부서질 것만 같다. 조금이라도 문이 덜 흔들리게끔 몸으로 지탱했다. 결국 흔들리던 문이 넘어갔다. 경첩에서 소리가 들리더니 아예 떨어져 나갔다. 무너지는 문을 뒤로하고 계단을 마구 뛰어 올라갔다.
“아!”
지성이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시야에서 사라졌다. 발목을 붙잡고 주저앉았다. 등 뒤로는 어기적거리며 집요하게 재민과 지성의 뒤를 쫓는 좀비들이 득실거렸다.
“괜찮아?”
재민이 지성을 부축하며 함께 계단을 올랐다. 식은땀이 났다. 지성을 잡으려는 좀비를 재민이 발로 차냈다. 계단 아래로 고꾸라지고도 다시 일어났다. 계단에 놓여있는 소화기를 집어 던졌다. 볼링핀 넘어가듯 우수수 좀비들이 쓰러져 넘어졌다. 빠르지만 확실하지 못한 움직임 덕에 좀비들의 속도가 느려졌다. 그 틈을 타 지성을 부축한 재민이 방 안으로 들어갔다. 제발. 하늘에 빌었다. 당연히 신 따위 믿지 않았다. 어디서 주워들은 신 이름들을 모두 읊었다. 살려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조용히 숨을 죽였다. 지성과 재민의 정확한 위치는 알지 못하는 덕에 문을 두드리는 행동은 없다. 하지만 아직 여전히 건물 안에는 좀비가 가득했다. 건물 안에 완전히 갇혀 버렸다. 2층이기에 뛰어내리기엔 높은 높이였다. 일단은 안에서 하루를 보내보기로 했다. 방금 전 소화기를 들어 올리느라 골프채를 내려두고 온 탓에 무기도 없었다. 지성의 발목이 점점 부어올랐다. 심각하진 않지만 다리이기에 치명적이었다.
“약간 삔 것 같은데 괜찮아?”
재민이 다정하게 지성의 발목을 주물러주며 말했다. 약간 인상을 쓰긴 하지만 크게 다친 것은 아닌 듯했다. 문에 귀를 기울이자 좀비의 울음소리만 가득했다.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창밖을 보자 큰 나무 한 그루와 그사이에 걸려있는 구름 한 점이 보였다. 유유히 하늘을 떠다니는 구름이 자유로웠다.
"지성아, 손목에 아대는 왜 차고 있는 거야?"
땀에 쩔어도 피에 쩔어도 절대 벗는 법이 없던 아대였다. 조심스럽게 묻자 홀가분하게 천 덩어리를 집어 던졌다. 손목 위에 커다란 흉터가 보였다.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 죽으려고 했는데 정작 이렇게 되니 살고 싶어요."
"..."
"살고 싶어요, 형"
감정이 북받쳐 오르는지 방울진 물들이 눈에서 마구 떨어졌다. 어른스럽게 좀비 따위 무섭지도 않다는 듯이 행동하던 지성이지만, 어쩔 수 없는 애였다. 열일곱이라는 어린 나이에 가족의 생사도 확인할 길 없이 지옥 속을 걸었다. 눈물이 피부의 굴곡을 타고 흘렀다. 축축하게 젖어 들어간 물길이 얼굴 위에 생겼다. 재민이 지성을 안았다. 품 안에 들어오는 얇은 몸뚱아리가 급히 숨을 들이마신 탓에 크게 부풀었다 수축한다. 히끅거리는 소리와 함께 어깨가 들썩였다.
"지성아. 살아서 나가자. 같이 살자"
지성의 귀에 다정히 속삭여준다. 다짐했다. 살아야 할 목표가 하나 더 생겼다. 뜨거운 열기를 비집고 일어나 피는 꽃. 지옥 불 속에서 희망이 하나 더 피어올랐다.
“저기로 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
어느 정도 진정이 된 지성이 손으로 창밖을 가리켰다. 창문 밖에 자리 잡은 튼튼한 나무 한 그루.
"나갈 수 있겠어?"
재민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지성의 목소리는 단단하다.
"살아야죠.”
"응. 살아야지."
창문을 열고 조심히 나무를 타고 내려왔다. 뼈 주변이 아릿해지는 고통이 지성의 발목을 감쌌다. 이를 악물고 소리를 참으며 나무를 타고 내려왔다. 살았네 또. 얼굴을 마주하고 웃었다. 긴박한 상황에선 감정이 배로 움직인다던가, 작은 것 하나에도 쉽게 웃고 감동하고 울고 힘들어했으며 좋아했다. 의지가 되는 상대에게 정이 가는 것은 당연했다. 서로가 좋았다. 혼자라면 절대로 헤쳐가지 못할 어둠을 함께하는 상대였기에.
*
그 뒤로는 아는 이야기. 몇 안 남아있던 식량이 모두 떨어졌고, 운 좋게 차 키가 꽂혀있는 차를 발견했다. 서월의 끝을 향해 달렸고, 터널 안 좀비 떼와 마주쳤다. 라디오 방송에서 좀비의 수가 과도하게 많거나 생존자가 없다고 판단되는 지역을 폐쇄하였다고 말했다. 그 말이 맞긴 한지 서월에는 좀비가 더럽게 많았다. 지금 터널 안을 보나, 어제의 좀비 떼를 보나, 어디를 가던 좀비가 득실거렸다.
"형, 우리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거예요?"
지성이 질문했고 날카로운 손톱 탓에 손등에 상처가 새겨졌다. 차 보닛에 올라탄 좀비가 얼굴을 문댔고, 멀리서 좀비들이 재민과 지성이 탄 차를 향해 달려왔다. 재민은 나가려 했지만 지성이 그런 재민을 저지했다. 어쩔 수 없이 차를 뒤로 후진했다. 그런 지성과 재민을 따라 좀비가 따라왔다. 번뜩 재민의 머릿속에 빛에 반응한다는 말이 떠올랐다. 가방 안에 손전등을 멀리 던졌다.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손전등의 앞 유리가 깨졌다. 생각하지 못한 점이었다. 절망에 휩싸였지만 간과하지 못한 점이 또 하나, 좀비는 소리에도 반응했다. 큰 소리를 따라 좀비들의 방향이 일제히 쏠렸다. 그 틈을 타 차를 버려두고 터널 안으로 뛰었다. 자동차의 라이트를 향해 좀비가 달려왔다. 비어버린 터널 뒤를 뛰쳐나갔다. 지옥의 끝을 향해서. 뒤늦게 소리를 들은 좀비들이 지성과 재민을 향해 달려왔다. 서월의 끝이 보인다.
한참을 달렸다. 정부 총괄 캠프의 입구가 보였다. 형 저희 살았어요. 기쁨에 가득 찬 지성의 목소리가 높다.
"지성아 근데 나 손이"
물렸나? 그건 아니었다. 이전에 지성이 만들어낸 작지만 깊은 상처. 그 주변이 파랗게 물들어 갔다. 손등을 타고 목까지 핏줄이 마구 튀어나왔다. 지옥의 끝 정부 총괄 캠프의 바로 앞 입구에서 길이 막혀버린다. 지성이 재민을 껴안고 품 안에 옭아맸다. 재민이 지성의 머리를 짧게 쓰다듬어 주었다.
돌아오지도 않을 길을 밟을 거면서 마지막까지 다정했다. 옷자락을 세게 잡은 손에 힘이 마구 들어갔다. 재민이 억지로 캠프 입구를 향해 지성을 밀어 넣었다. 입구의 경비를 서는 사람들이 지성을 발견했다. 핏줄이 투텁게 올라온 재민의 모습은 금방이라도 좀비로 변할 것 같다. 두 명의 경비병이 지성을 끌고 안으로 들어갔다. 악에 받쳐 소리 지르는 꼴이 애처롭다. 발버둥 쳐보지만 무력 앞에 이끌려 갈 수밖에 없었다. 경비병 하나가 재민을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지성은 안으로 끌려 들어가면서도 마지막까지 손을 뻗었다.
"다녀올게, 지성아"
청색의 철문이 지성의 시야를 가로막았다. 문이 굳게 잠기고 문 뒤에서 지성은 절규했다. 소리에는 힘이 없다. 철문을 두드려도 변화 하나 없이 단단했다. 문 너머로 귀를 찢는 소음이 들렸다. 한참을 그 밑에 앉아있다, 내부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지성의 기분 만큼 축축하고 어두운 곳이 지성을 반겼다. 벽에 걸려있는 달력. 오늘 날짜는
9월 11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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