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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남다른

​이무기

  이리저리 낡은 티가 가득한 허접하기 그지없는 어느 상가 건물. 외관은 물론 내관까지 건물의 연식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데 입점한 가게는 없어 공간감 자체는 막 지어진 건물마냥 휑하다. 작동은 하나 의심스러운 엘리베이터가 꾸준히 찍고 내려오는 걸 보면 알 수 있듯이 유일하게 인기척이 묻어나는 곳은 4층, 그중에서도 아예 업장의 이름도 종류도 안내되어있지 않은 가장 안쪽 문이다.

 

  장사를 했던 과거의 흔적조차 없이 말끔하기만 한 불투명 문을 열면 나오는 사무실 비스무리한 공간에 지성은 오늘도 아리송한 얼굴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중이다.



 

   '청년 실업률 역대 최고치!'

 

   "……."



 

  지극히 의심스러운 이 공간에서 하고 있는 것은 의심이다. 자신의 미래에 대한 의심. 나 이대로 괜찮은가? 계속 이렇게 시간을 버리고 있어도… 괜찮은가? 그럴까? 이런 걱정을 하는 사람의 심리는 대체로 이미 기울어진 후이다. 지성은 사실 확신하고 있었다. 나, 전혀 안 괜찮다. 이대로 가면… 안 된다!



 

   끼익~

 

   "박 실장~"

 

   "형!"

 

   "어허."

 

   "…사장님."

 

   "웅. 뭐 하고 있었어?"



 

  한 손에 까만 봉투를 바스락대며 들어온 재민이 단 몇 걸음 만에 가까워진다. 때아닌 종이 신문을 꾹 쥐고 있던 지성은 흠칫 손에 든 걸 숨기고 싶었지만, 접어 접어 들고 있던 것도 아니고 당당하게 쫙 펼치고 있던 걸 재민이 못 봤을 리도 없고 한 순간에 없던 척 할 수는 없었다. 결국 코앞에 다다른 재민이 촥 하는 소리와 함께 종이 신문을 걷어 갔다. 아무 말도 못 하고 지성은 움츠러들었다. 이러나저러나 아무튼 간에 재민은 저의 직속 상사 겸 BOSS니까 말이다. 아, 그보다 먼저 대학 선배고…



 

   "신문? 읽고 있던 거야 이걸?"

 

   "네 뭐…."

 

   "흠 어디보자앙."



 

  하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던 대목이라 왠지 티가 날 것 같았다. 특히나 재민은 특이하고. 들키면 어떡하지? 청년 실업률 어쩌고 하는 내용을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었단 걸 들키면 가뜩이나 최근 들어 지성의 진심을 의심하고 있던 재민은 대뜸 버럭 할 것 같아서 지성은 옷에 가려진 등으로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만 있었다.



 

   "마류산 산사태?"

 

   "?"

 

   "이럴 줄 알았지 내가. 쯧, 기껏 위해서 찾아가줬더니."

 

   "……."



 

  그런 기사가 있었어? 하기도 전에 지성은 떨떠름했다. 짧은 과거 회상 한 구절. 이전에 사무실─이라고 불러 주고 싶진 않지만, 마땅한 다른 명칭이 없다─에 여느 때와 다름 없이 한량처럼 잘 앉아 있다가 눈을 번쩍 뜨더니 파바박 뛰쳐 나갔던 재민. 어영부영 있긴 한 매뉴얼에 의해 어리둥절한 얼굴로 일단 쫓아 나간 지성은 어어, 하고 보니 재민의 차량에 탑승해 있었고,



 

   "형 우리 어디 가는 거예요?"

 

   "사장님."



 

  세상에서 제일 쓸데없을 대화 한 자락만 나누고는 고대로 편도 3시간 거리의 지방으로 끌려갔다. 휙휙 점점 규모가 작아지는 건물과 도로가 창에 스치는 걸 멍하니 바라보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눈 뜨니 저는 여전히 조수석에 앉아 있는데 운전석은 비어 있고 차가 멈춰 있었다. 창밖으로는 음침한 연기를 뿜어내는 커다란 산과, 그 산으로 들어가는 길일 등산로 초입이 보였고 그보다 지척에 재민은 거기서 <마류산 관리원> 이라는 글자가 적힌 조끼를 입고 있는 아저씨와 존나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잠이 덜 깨서 멍한 채 지성이 더듬더듬 팔을 뻗어 운전석 쪽 창문을 내렸다.



 

   "아니 학생. 몇 번을 말해."

 

   "저도 몇 번을 말씀드립니까. 예? 산이 위험하다니까요??"

 

   "그니까 위험할 게 뭐가 있냐고오. 여기 몇십 년째 등산객들 잘만 다니고 있는 산에! 어린 학생이 갑자기 와서는 자꾸 불길하게 왜 이래?"

 

   "아니, …"



 

  한 10초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다시 지잉 올렸다. 신경 끄자. 이건 악몽일 거야, 모르는 척하고 자자. 카시트에 뒤통수를 콩 박고 눈을 감았다. 차창 밖으로 웅웅대는 두 사람의 목소리가 시끄러웠다. 그 탓에 올 때처럼 푹 잠들지도 못하고 선잠이 들어서 애매하게 시간을 느꼈다. 재민이 심각한 얼굴로 차에 도로 탑승했을 땐 체감 1시간이 지났을 때였다. 눈 떠보니 실제로는 고작 10분 지나 있었고.



 

   "늘 느끼는 거지만 사람들 참 말 안 들어."

 

   "……."



 

  형 같으면 듣겠냐고요. 구구절절 설명해도 미심쩍을 판에 대뜸 뭔가 이 산에서 이상한 게 느껴지지 않냐는 둥, 이대로면 위험하다는 둥 앞뒤 잘라먹은 자유로운 화법 구사했을 게 빤하다. 지성은 속으로 말대꾸를 했지만 아직 졸음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척 눈을 비비적거리기만 했다. 혼잣말이었는지 재민은 별다른 타박이나 재촉 없이 산 관리원이 들어간 경비실 쪽을 의미심장하게 쳐다보며 차를 뺐다. 핸들을 휙휙 돌리며 지성에게 물었다.



 

   "박 실장도 보이지. 산에 잡귀 덕지덕지 붙은 거."

 

   "네…."



 

  질문에 백미러를 힐끗이니 여전히 산은 시꺼먼 연기에 싸여 있다. 뭐가 보이긴 하니 대답을 하긴 했으나 네 보다는 에 에 가까운 발음이 애매했다. 늘 그랬듯이 지성의 눈에 보이는 것도 애매했기 때문이다. 포장도로에 진입하며 재민이 쯧, 혀를 찼다. 일 나고 후회하지. 낮게 읊조려지는 그 말에 한 박자 늦게 돌아보니 정면으로 돌아오는 고개가 아무래도 백미러를 보고 있던 듯했다. 그러게요. 의미 없는 동조를 했다. 올 때처럼 잠들고 싶었으나 눈이 말똥했다. 운전 하는 사람이랑 농담 따먹기 할 수도 없고, 더군다나 일이 원활하게 진행이 안 돼서 심란한 재민이랑은 더더욱. 심심해진 지성은 제 폰에 블투 연결해서 노래를 틀었다. 아무거나 누른 노래는 Welcome To The Black Parade. 이크, 하필 이 노래가. 그러나 일부러 넘기면 이상해 보일 것 같아서 잠자코 있었다. 재민은 노래가 마음에 들었는지 핸들 위에서 손가락을 까닥댔다. 공상하며 운전자만큼 정면을 주시하는 지성은 꽤 자주 재민의 손가락을 바라봤다.

 

  출장(?)은 그렇게 마쳤다. 한 거라곤 조수석에서 자기, 자는 척 하기밖에 없었던 지성은 그래서 난 대체 왜 데려간 거야? 의아했으나 늦은 밤이 되어 자취방에 도착하니 한 것도 없으면서 따질 여력도 없게 온몸이 녹초였다. 아마 그래서 피곤하다며 나가지 않는 재민을 순순히 받아들였는지도. 재민은 그날 지성의 자취방 건물 앞에 차를 대고 소파에서 자고 갔다. 그 과정이 다소 귀찮긴 했으나 아침에 재민보다 일찍 눈을 떠서 사장이 우리 집에 있으면 출근을 해야 하는가 마는가에 대해 짧게 고민하던 지성은 곧 마음 놓고 침대에 파묻혔으니 의외로 나쁘지 않은 선택인 것도 같았다.

 

  지성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종이 신문을 촥 촥 접어 접객용 테이블 위로 휙 던지는 재민을 쳐다봤다. 이게 시작이야. 손목에 걸려 있던 까만 봉투를 사장 책상에 얹으며 손 떠난 일에 미련 없단 투로 말하는 재민에게 할까 말까, 그동안 극심하게 고뇌했던 내용에 대해 입을 뗐다. 아무래도 아까 읽었던 기사 탓일까.



 

   "형."

 

   "사장님."

 

   "여기까지 왔는데요, 뭔가 잘못됐단 생각은 안 드세요?"

 

   "갑자기?"

 

   "아니, 쫌! 생각해 봐요."



 

  소파에 앉아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두 손은 허벅지에. 목소리가 커진 데다가 정말 진심으로 진지하단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재민을 향해 겨누고 있다. 멀쩡한 의자 놔두고 책상에 걸터앉는 재민은 큰 표정의 변화가 없었으나 씰룩이는 눈썹과 척 끼는 팔짱을 보아하니 벙찐 것 같았다. 지성은 바싹 마르는 입술을 한 번 핥아 적시고 말을 이었다.



 

   "다짜고짜 가서 막. 이상한 기운이 느껴진다거나 위험하다고만 하고, 굿 해야 된다고 그러면 대체 누가 신뢰를 가지고 말을 듣겠어요."

 

   "허어."

 

   "그리고 아무리 소득 없이 일단은 물러난다고 해도, 연락처 하나 정도는 남기고 와야죠. 그래야 이렇게 일 터졌을 때 그때 그 사람 말 들을 걸 후회도 하고 뒤늦게 연락도 하고 그런 거지."



 

  반쪽짜리 용기였다. 이 사짜 무당 노릇에서 난 이제 빠질래요 그 말을 하기엔 지성은… 너무나도 여렸다. 그 탓에 애초에 잡혀 여기 앉아있다는 건 지성도 잘 아는 바이니 굳이 짚지 않기로 한다.

 

  진지하고도 영양가 있는 지성의 말을 다 들은 재민은 고민에 빠진 듯했다. 여전히 책상에 걸터앉아 팔짱을 낀 채이지만 시선은 아래를 보고 흠. 입술을 잘근거리고 있다. 말은 반만 했어도 퇴직 희망만큼은 품에 여즉 안고 있는 지성은 그런 재민을 열렬하게 응시하며 다짐했다. 이렇게 말 했는데도 아무것도 안 바뀌면, 그땐 진짜로 참고 참았던 그 말을 해 버리고 말 거라고!



 

   "그치만. 그랬다가 진짜 굿 해달라고 하면 어떡해. 저번엔 죄송했습니다 지금이라도 빨리 와 달라고 연락 오면?"

 

   "네??"

 

   "귀찮잖아. 지금이 좋은데."



 

  형이 아니 사장님이 만두 사 왔어 같이 먹자.

 

  간결하게 맺어진 상황이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이란 걸 너무나도 뚜렷하게 보여주었으나 지성은 이번에도 퇴직 선언을 하지 못 했다. 사유는 열심히 한 생각을 또박또박 말로 전달해줄 넋이 가출했기 때문이었다. 간단하게 말하면 어이 털려서 정신 못 차리고 있단 소리다.

 

  룰루랄라 봉투 도로 들고 와서 접객용 테이블에 만두 해제하는 재민을 입 헤 벌리고 바라본다. 지금이 좋다고?? (본인은 자퇴하고 나는 휴학 시켜놓고 영적인 능력으로 고민과 사건을 해결해준다는 말 같지도 않은 업종의 사무실을 열어서 지금껏 몇 달동안 제대로 된 손님도 수입도 0인) 지금이 좋다고???? 그러고 있으려니 입안으로 따끈한 김치만두 한 알이 들어왔다.



 

   "으뜨그!!!!"

 

   "너무 걱정하지 마 지성아 아니 박 실장. 원래 이런 일은 입소문 한 번 타기 시작해야 불이 붙어."



 

  존나 뜨거운 만두를 삼키지도 씹지도 뱉지도 못 하고 두 손으로 입을 가린 지성은 눈물 고인 눈으로 재민을 째려봤다. 고인 눈물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는데 뜨거워서이기도 하고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이기도 하고. 히죽 웃는 재민은 여전히 해맑기만 하다. 아니 입소문도 입소문을 내줄 사람이 있어야 나는 거지 해결한 의뢰가 하나도 없는데 어떻게! 하고 소리치고 싶은 마음은 만두에 턱 막혀 버렸다. 불평 못 하게 하려고 일부러 만두를 물렸나? 문득 든 뻘한 생각일 뿐임에 지성은 덜컥 소름이 돋아 얌전해진다. 대체 어떻게 월세를 내고 월급을 주고 본인 생계를 유지하는지 등등 하나부터 열까지 의심스럽기 그지없는 사장이긴 하나 재민은… 정말 특이한 게 맞으니까. 단 하나 확실한 게 재민의 능력이니까. 재민은 아무 말도 안 하고 흐흥 하고 웃으며 그런 지성을 훑는다.

 

  재민은 확실히 영적인 능력이 있다. 흔히들 말하는 귀신, 재민 말하기론 잡귀들을 보는 것부터 시작해서 잡아놓고 쫓아내고 달래서 천도하고 줘 패서 천도하고 것도 안 되면 물건 하나에 영영 봉인하는 것까지 다 할 수 있는 진짜 능력자다─그런 사람이 어떡하면 저렇게 사짜같을 수 있을까 지성은 늘 궁금하다─. 꿈이란 걸 안 꾸고 사는 사람이 간혹 꿈 꿨다 하면 예지몽에 깨어 있을 때도 한 번씩 희번뜩 삼백안 뜨며 예언 같은 말을 중얼 거리기도. 같이 다니는 동안 뭐 어마어마한 예지를 당한 적은 없어도 가끔가다 발 조심, 불 조심 하라는 말 귓등으로 들었다가 넘어지고 데였던 적이 깨나 되는 지성으로서는 재민이, 음, 어, 그러니까, 이따금씩 쎄했다. 꼭 뚫어버릴 듯이 쳐다보는 지금처럼……

 

  동업하는 일이 이런 분야─영능력 사무소─니까 귀감 삼고 안 도망가는 거다. 결국 어쩔 줄 모르다가 시선을 먼저 피한 지성은 입 가린 채 마저 만두를 씹어 삼킨 뒤 낄낄 웃는 재민이 뚜껑 따 내미는 생수를 벌컥 들이켰다.



 

   "아무 의미 없죠?"

 

   "뭐가."

 

   "방금 또 기분 나쁘게 쳐다보셨잖아요."

 

   "어허. 내가?"

 

   "아닌 척을…"



 

  그냥 내가 뭐라 할지 알 것 같아서, 말 못 하게 하려고 괜히 그런 거잖아요. 이 말을 다 못 전할 게 뻔한 눈짓으로 대신하며 지성은 재민이 반 잘라 둔 고기만두를 집어먹었다. 괜히 운 뗐다가 아니 너한테 뭐가 씌어 보이길래 이런 말을 들으면 지성은 오늘 밤 잠을 설칠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알맞게 식은 만두를 우물우물 먹으며 이번엔 한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있었다. 재민의 귀여운 모양 입꼬리가 움직이기 전에 얼른 아무런 말이나 꺼냈다.



 

   "근데 저 산, 이제 시작이라는 건 무슨 소리예요?"

 

   "말 돌리네, 우리 지성이."

 

   "박 실장."

 

   "아구 알아쪄. 아웅 귀여워 우리 박 실장."

 

   "……."



 

  아 진짜 능구렁이 같다. 실실 웃는 재민을 보며 생각한다. 지성은 이럴 때마다 찝찝했다. 무슨 말을 들을까 걱정하는 지도 알고 말 돌리려던 것도 알고 저에 대해 모르는 게 전혀 없는 듯한 재민이 다 알면서 넘어가준단 티를 줄줄 낼 때. 만두를 집으려던 젓가락을 물리는 재민을 눈 가늘게 뜨고 응시한다.



 

   "그냥 뭐. 손 안 쓰면 그 산에서 오만 나쁜 일들이 다 일어날 거란 말이지."

 

   "산사태로도 안 끝날 만큼이었어요?"

 

   "음- 근데 박 실장도 봤다 그랬잖아. 왜 자꾸 모르는 것처럼 그래?"

 

   "전 봐도 잘 모르는 거 아시잖아요."



 

  이번엔 재민이 눈을 가늘게 뜬다. 그런대도 지성은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왜 그런 눈으로 보세요. 형이, 사장님이 누구보다 잘 아실 텐데요. 그저 몇 마디 꾸물댈 뿐. 난 진짜 봐도 잘 모른단 말이야.

 

  재민의 동업자로 채택된 만큼 지성도 영적인 능력을 가지고는 있다. 그러나 기술했던 것처럼 지성이 가진 것은 재민에 비해 지극히 애매한 수준에 미쳤다. 재민은 모든 형체를 확실하게 보고 영적으로 물리적으로 타격을 주고, 지성은 그때 마류산에서 봤던 것처럼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연기 같은 형상으로 모든 것을 보며 아무런 해를 입히지 못한다. 특이점이라고 해 봤자 검정, 보라, 빨강 등 가지고 있는 기운에 따라 형상의 색이 바뀐다 정도. 자주 답답하긴 했으나 물론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부 잡귀의 끔찍한 모습을 목도하지 않을 뿐더러 해를 입히지 못하는 대신 해를 입지도 않는다. 재민은 그 반대.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 : 지성이 잡귀를 무서워하는 것은 단순히 겁이 많은 탓이다. 미디어를 통해 각인 당한 이미지를 지우지 못해서…)

 

  커다란 산을 온통 휘감은 시꺼먼 연기를 봤어도 지성이 생각할 수 있는 건 거기서 끝이다. 무슨 일이 얼마나 날지 그런 건 전혀 시야 밖의 일이라고. 끝까지 난 아무것도 모르오 입장을 고수하자 재민은 다리까지 척 꼬며 나무젓가락 쥔 손으로 팔짱을 낀다. 대체 또 뭔 말을 하려고. 지성은 눈치를 보며 괜히 만두를 막 집어먹었다.



 

   "아무리 못 봐도 그 규모는 눈에 들어 왔을 건데."

 

   "……."

 

   "그 구분을 아직 못 하나? 우리 같이 이 일 한 지 반년이 넘었는데 설마."

 

   "……."



 

  혼잣말인가? 혼잣말이면 좀 작게 하시지. 지성은 눈치를 보는 동시에 어이 없었다. 아니 뭘 많이 봐야 감을 잡지 않을까요?! 양 볼이 터지게 밀어 넣은 만두를 우물대며 지성은 딴청을 시작했다. 아웅 볼에 딱 먹이 저장한 게 햄스터 같네 울 박 실자앙~? 좀 전까지 꼽 줘놓고 살갑게 벌떡 일어나는 게 옆에 와서 앉을 낌새라 지성은 벌떡 일어났다. 물론 그것과 상관 없이 재민은 옆자리에 앉아 몸을 기울였다. 아구구. 하구구. 기이한 소리와 함께 꿋꿋하게 서 있는 지성의 무릎을 껴안으려 하기에 지성은 얼른 털푸덕 앉아 버렸다. 제가 서 있고, 재민이 무릎을 껴안으면 아무래도 고개 위치가….

 

  마저 만두를 다 해치우고 전화 안 들어오나 미미한 바람과 함께 사무실에 죽 치고 있는데 역시나지. 오늘도 하릴없이 날려 버렸다. 지성은 재민의 차에 태워져서 귀가했다. 체념인 건지 같이 있는 동안에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붕 떠나는 차의 뒤꽁무니 보고 있자니 또다시 암담한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내 월급은 꼬박꼬박 들어오고 있지만… 이게 언제까지 가능할지 불확실함에 불안했고 솔직히 재민의 쪽도 걱정이 됐다. 진심으로 말이다. 혹시 아까 하는 말도 그렇고 형도 흥미 떨어졌는데 이제 와서 관두기 민망해서 저러나? 보통은 그럴 텐데 재민은 보통이 아니라 그것도 아닐 것 같았다.

 

  그저 그렇게 서 있다가 집으로 올라가는 수밖에 없었다 지성에게는. 수당 받는 하루를 보냈음에도 썩 상쾌하지 않아서 무기력하게 씻고 누운 지성은 핸드폰으로 노래 하나 틀지 못하고 까무룩 잠에 들었다. 왠지 유독 피곤했다. 그래도, 내일이 주말이어서 다행이다.








 

   지이잉. 지이잉.

 

   "……."

 

   지이잉. 지이잉. 지이잉. 지이잉.

 

   "아이, 누구야아…."



 

  주말이라면 응당 해가 중천에 뜨고도 한참을 밍기적 거리다 일어나야 했는데 오늘의 지성은 방해를 받았다. 우왕좌왕 팔을 뻗었지만 발신자 확인은 잊지 않았다. [경영19 나재민 선배] 오티날 어쩌다 보니 저장한 그대로의 번호는 아직 재민에게 들키지 않았기 때문에 건재했다. 대체 왜 주말 아침부터. 지성은 탐탁지 않아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다가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전화를 받았다. 대학 선배 이전에 상사여가지고…



 

   "네, 형…."

 

   - 울 쥐송이잉~ 뭐 하고 있었어?

 

   "자고 있었죠…."

 

   - 흐흐. 그래쪄?



 

  주말이라고 그놈의 호칭 강요도 안 한다. 마음의 준비 없이 들은 하이톤으로 올라가는 목소리는 뇌를 푹 찌르는 것 같았지만 적응한 지 꽤 된 지성은 찌푸리지도 않았다. 사람 깨워놓고 실없는 얘기만 하는 것에 역시 별일 아니구나, 핸드폰을 귀에 얹어놓은 채 다시 눈을 감았다. 조용하게 있으니 재민은 곧장 용건을 내놓았다.



 

   - 다음 주는 외근이야. 지성이랑, 나랑.

 

   "외근이요? 갑자기?"

 

   - 응. 오늘 의뢰가 들어왔지 뭐야?

 

   "형… 오늘 출근했어요?"

 

   - 출근이라기 보다는~ 사무실에 뭐 가지고 올 게 있어서 갔는데 마침 딱 타이밍이 맞았더라구.



 

  그렇구나아. 큰 감흥 없이 대답한 지성은 그래 보이지 않을지 몰라도 속으론 되게 신기했다. 주말에 난데없이 들어온 의뢰를 재민이 수락했다는 걸로 모자라서 이상할 만큼 기분이 좋아 보인다.

 

  딱히 궁금한 게 있지는 않아서 혹시 재민이 다른 말을 더 하나 잠들락 말락 기다리고 있던 지성은 재민도 똑같이 들숨 마셨다가 날숨 쉬기만 하고 있다는 걸 깨닫고 조용히 물었다.



 

   "혹시, 무슨 의뢰인지 저가 여쭤봐야 하는 건가요?"

 

   - 음, 혹시 궁금해? 얘기가 좀 긴데 지성이가 궁금하다고 하면 내가 쫘아악 설명을,

 

   "안 들어도 될 것 같아요."

 

   - 힝.



 

  물론 의뢰에 대해 자세하겐 아니더라도 숙지해야 하는 게 맞으나 주말 아침인데 시달리고 싶지는 않았다. 일로부터든, 재민으로부터든. 중요한 거였다면 묻지 않아도 재민이 설명해줬을 것 같고. 단호하게 대답하니 실망이란 티 풀풀 내는 재민이지만 지성이 하암 하품을 하니 매달리지는 않았다. 알았어어. 월요일에 만나서 얘기해줄게. 아, 사무실로 출근할 필요 없고 내가 데리러 갈게. 순순히 통화를 마무리하는 것 치고 되게 질척거리는 목소리였는데 지성은 외면했다. 네 월요일에 봬요오. 늘어지는 말꼬리는 애교를 부리는 게 아니라 잠에 빠져들고 있는 거다. 손 하나 까딱하기도 귀찮아서 엎드려서 고개 옆으로 돌린 자세에 핸드폰까지 고대로 얹어 놓고 잠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담 걸리는 거 아니겠지? 그런 걱정도 지성을 움직이지 못했다.

 

  대체 무슨 의뢰길래 까다로운 재민이 일 하는 날이 아님에도 받아들였을까. 마지막으로 지성은 옅은 호기심을 가지며 스르륵 눈을 감았다. 재민이 통화를 끊지 않았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았다.

 

  고르게 울리는 색색거리는 소리에 핸드폰 귀에 딱 붙이고 눈 빛내고 있던 재민이 입 틀어막고 있던 손을 슥 떨쳐냈다. 지성아 잘자. 속삭이듯 인사를 건네고 평온한 호흡을 대답 삼아 미련 없이 전화를 끊는다. 애초에 지성이 자고 있을 걸 알고 건 전화였기 때문에 큰 욕심이 없었다. 단지… 막 깨어났을 때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을 뿐이었다.








 

   "으아아악사장님저일그만둘래요오오오으아아아악!!!!"

 

   "꺄~~~~"



 

  속에 꽉꽉 눌러 담아놓았던 그 말이 울부짖음으로 터져 나온 것은 상공으로 약 5km에서. 이 말 언제 하나 비장했던 것에 비해 맥 빠지는 타이밍이긴 한데 지극히 진심이었다. 물론 재민은 못 들었다. 거기서 수천 미터를 아래로 곤두박질치느라 지성도 제가 그 말을 했는지 아니면 살려달라고 외쳤는지 기억하지 못 하는데 옆자리 앉아 만세하고 이 순간을 만끽하고 있는 재민이 어떻게 알아들었겠어.

 

  반대로 허술한 안전바 생명줄로 꽈악. 부여잡고 있는 지성은 잔뜩 경직된 상태로 미친듯한 속력으로 스치는 바람을 맞으며 기겁에 기겁을 하는 중이었다. 하얗게 질려가는 얼굴에 눈물이 고이는 것도 같았다. 대체 의뢰랑 놀이공원에서 롤러코스터 타는 거랑 뭔 상관이야? 재민의 사고방식에 따르자면 상관이 있었으나 지성은 분명 들었음에도 이해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몰라. 모르겠다. 일단 지금은 이 끔찍한 순간이 빠르게 끝나길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일요일 밤에 재민에게서 한 차례 추가 연락이 왔었다. 재민은 내일 오전 열한 시까지 1층으로 내려오라고 하며 '편한 옷'을 입으라고 했다. 그제야 의뢰 내용이 자세히 궁금했지만 어제 안 듣겠다고 한 것도 나고, 내일 이동하는 시간에 들으면 되니까. 다른 건 묻지 않고 상하의 세트 트레이닝복을 챙겨두었다. 무의식적으로 마류산을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산이나… 폐건물 같은 데 가겠지 뭐. 아니더라도 그 옷이면 충분할 거라고 생각했다.

 

  조수석에 올라 타며 지성은 재민이… '예쁜 옷'을 입고 있는 것에 우선 의아했다. 환한 얼굴로 지성을 맞고 곧바로 차를 출발시킨 재민은 토요일 아침에 못 해줬던 설명을 입에 기름칠 한 마냥 줄줄 말하기 시작했는데,



 

   "의뢰 주신 분이 아끼던 목걸이가 있대. 펜던트형 목걸이고 그 안에 사진이 들어있는데, 그 사진이 사랑하는 사람이랑 찍은 사진인 데다가 한 장밖에 없다는 거지. 근데 가장 큰 문제는, 사랑하는 사람이 이젠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거야."

 

   "저런…."

 

   "그걸 놀이공원에서 롤러코스터 타다가 잃어버렸대."

 

   "네?"

 

   "그래서 그 목걸이를 찾아 달라고. 그게 오늘의 의뢰!"



 

  숭숭 허점이 많은 첫 마디에서 다 이해하지 못했으나 듣다 보면 더 설명을 해줄 거라 생각해서 질문하지 않은 건데 점프에 점프를 해서 나락으로 가 버리는 내용에 지성은 이성을 놓치고 말았다. 그게 무슨, 아니, 그걸 어떻게, 그걸 저희가 어떻게 찾아요! 한참 만에 버벅이며 물었건만 재민은 부릉부릉 운전대를 돌리며 어깨를 으쓱였다.



 

   "뭐, 유품이나 다름 없는 거라니까 혹시 그 사람 영혼이 맴돌고 있을지도 모르지."



 

  남 심각한 일에 왁왁대기도 죄송스럽고 듣고 보니 그럴듯하긴 했는데… 재민이 그 롤코로 지성을 데려가더니 당연하게 줄을 섰을 때부터 무언가 이상했던 것이다. 원래 차근차근 타임 라인을 밟아가야 하는 거야. 재민의 의견은 그러했고 무서운 놀이기구를 타지 못하는 지성은 점점 짧아지는 줄에 초조했으나 형 혼자 타고 오라고 줄행랑 치고 싶지는 않았다. 사람들 다 화기애애 행복하게 돌아다니는데 혼자 벤치에 덜렁 앉아있기 싫었으며 속상한 얼굴로 쓸쓸히 롤러코스터를 탈 재민에 마음이 쓰였다.

 

  근데 이렇게까지 엄청난 롤러코스터일 줄 알았으면 그냥 혼자 타라고 할 걸 그랬어….



 

   "우, 으으…"

 

   "어떡해 지성아. 많이 힘들어?"



 

  그렇다 아니다 대답을 하는 것도 힘들어 지성은 축 늘어진다. 옆에 딱 붙어 앉은 재민이 지성을 거의 감싸 안아 제게 기댈 수 있게 했다. 다른 때라면 질색하고 떨어졌겠으나 따뜻한 계절이라지만 높은 곳에서 찬바람을 하도 맞은 지성은 약간 떨고 있기도 했다. 꼬옥 안아서 온기를 나눔과 동시에 픽 넘어가지 않게 지지해주는 걸로 꽤 안성맞춤인 자세였다. 지성은 훌쩍이며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을 감았다. 어지러워 멀미가 나는 종류는 아닌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온몸에 힘이 안 들어갈 뿐….

 

  그냥 내가 혼자 탈 걸 그랬네. 눈썹을 추욱 늘어뜨리는 재민에게 지성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진짜 안 되는 거였으면 어떻게 해서든 안 탔을 거예요, 글구 저가 안 타면 형 혼자 타야 되잖아요…. 그 말에 재민은 진한 감동을 받았는지 주절주절 주접 폭격을 시작했다. 마음씨가 곱네 천사가 세상에 내려왔네 햄찌 천사네 하는 걸 듣다가 듣다가 지성이 말문을 막았다.



 

   "그래서 뭐 좀, 알아낸 것 같아요?"

 

   "어? 아, 의뢰. 흠 글쎄."

 

   "……."



 

  그럼 그렇지. 아무리 그걸 타다가 잃어버렸다고 한들 목걸이가 풀려서 날아간 걸 직접 타본다고 찾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기대도 안 했다는 듯한 반응에도 재민은 개의치 않았다. 지성의 어깨를 둘러안은 팔의 반대 팔로 메고 온 가방을 뒤적이더니 놀이공원 입구에서 가져온 팜플렛을 뒤적이며 주변 지리를 탐색하고 있다. 지성은 슬그머니 눈을 떴다.

 

  평일인 데다가 월요일이다 보니 인파는 바글댄다기 보다는 딱 적당할 정도로 지나다니고 있었다. 현장 학습을 온 듯한 교복 입은 학생 무리부터 커플들, 가족들까지. 모두 신난 표정으로 입가에 웃음을 걸고 다니는 걸 스치는 시선으로 지켜보는 지성은 사실 그 사이사이 떠다니는 연기들을 더 집중해서 보고 있었다.

 

  처음 보는 노란색 연기.



 

   "형 있잖아요, 노란색은 좋은 의미겠죠?"

 

   "응?"

 

   "맨날 검은색, 빨간색 연기만 보다가 노란색 연기 보니까 궁금해서요."

 

   "아. 지성이 눈에는 그렇게 보이는구나."



 

  잠시 알아듣지 못 하는 것 같던 재민은 금세 끄덕였다. 지성의 시선이 움직인 자리를 비슷하게 눈으로 훑으며 말한다.



 

   "다른 데서 보는 것들이랑 비교해보면, 기분이 좋아 보이긴 하네."

 

   "신기하다. 역시 놀이공원이라 그런가."

 

   "대체로 행복한 추억을 남긴 곳일 테니까."



 

  행복한 추억을, 혹은 생전에 누리지 못한 재미를 찾아 이곳에 모였을 연기들. 어느새 지성은 무서운 것도 지친 것도 잊고 둥둥 떠다니는 그들을 멍하니 바라보며 재민에게 기대 있었다.

 

  얼마간 휴식을 취하고 있었을까, 재민은 다음 목적지를 정한 듯 진지한 눈썹을 하고 탐독하고 있던 팜플렛을 접었다. 지성아 다 쉬었어? 이제 괜찮아? 네 좀 괜찮아졌어요. 답하며 고개를 주억거리자 어깨를 감싸고 있던 손으로 목을 주물주물. 뜨끈하고 습한 손바닥이 맨살에 꼭 밀착해 닿자 지성이 흠칫 몸을 떨었다.



 

   "그럼 이제,"

 

   "네."

 

   "밥 먹으러 가자."

 

   "…네."



 

  의심 가는 다른 지점을 돌 거라고 생각 했지만 여기까지는 뭐, 오케이. 점심시간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가는 길에 머리띠도 하나씩 사자."

 

   "……."

 

   "난 토끼, 지성이는 햄스터?"

 

   "…몰라요."



 

  일 하러 온 건데 너무 즐기고 있는 거 아닌가? 의혹을 제기하고 싶었지만 크게 차질을 만들 일은 아닌지라 지성은 새침하게 답하고는 먼저 일어나 버렸다. 재민도 바로 뒤따라 몸을 일으켰다. 둘은 가까운 곳의 식당으로 향했다.

 

  기를 쓰고 외면했던 기념품샵. 그러나 식당에서 나오며 재민은 당연하다는 듯이 그쪽으로 쏙 들어갔다. 어휴. 대놓고 한숨을 쉰 지성은 별수 없이 따라 들어갔고, 나올 때는 햄스터 머리띠를 착 쓰고 고개를 푹 숙인 채였다. 방글방글 웃으며 지성을 마주 보고 매무새를 만져 주는 재민은 지성이 뭐라 투덜대기 전에 얼른 다음 장소를 언급했다. 아까 지도를 보며 점심 이후의 루트까지 다 정해둔 모양이었다.

 

  아까 있던 곳 쪽으로 걷는 재민과 발을 나란히 하며 시시콜콜한 얘기를 나누다가 지성은 틈틈이 궁금했지만 왠지 고민되어 물을까 말까 망설였던 질문을 꺼냈다.



 

   "근데 이 의뢰는 왜 맡은 거예요?"

 

   "의뢰가 들어왔으니까?"

 

   "에이, 들어왔다고 다 받는 거 아니잖아요. 저번에는 핑크 소금 뿌리면서 쫓아낸 적도 있으면서."

 

   "그거는. 그 사람이 말도 안 되는 부탁을 하니까."



 

  그러면 롤러코스터 타다가 흘린 목걸이 찾아달란 건 말이 되나, 지성은 갸웃거렸지만 곧바로 재민이 오랜만에 놀이공원도 오고 좋지~ 덧붙여서 토 달지 않았다. 형이 김에 놀이공원에 오고 싶었나보지 넘겨짚으며.

 

  후미진 곳에 멍하니 서 있는 지박령 몇에게 재민이 말을 걸었다. 말을 걸 수는 있어도 답을 들을 수는 없는 지성의 역할은 노란 연기의 옆에 서서 허공에다 말 거는 재민이 이상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게 위장해주는 것이었다. 재민은 사람 좋은 얼굴로 사근사근 혹시 근처에서 요런 목걸이를 본 적이 있느냐고 지성에게도 보여준 적 없던 사진을 내밀었고 노란 연기와 재민을 번갈아 보고 있으려면 곧 재민은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지성을 이끌었다. 본 적 없대. 그게 십수 번 반복 됐다.



 

   "이제 물어볼 만한 혼은 없는 것 같아요. 자리를 옮길까요?"

 

   "그래… 근데 여기서 더 가면 롤러코스터랑 너무 멀어지는데."



 

  재민은 찜찜한 듯이 자꾸 뒤를 돌아보았으나 애초에 생각이 다른 지성은 미련 없이 발을 옮겼다. 그러니까 지성은 그 목걸이의 존재 자체를 의심하고 있었다. 진짜 이 놀이공원에 있는 거 맞아? 여기서 잃어버린 거 맞아? 설령 여기서 잃어버린 게 맞다고 해도 찾을 수 없는 곳에 떨어졌거나 부서졌거나, 누가 가져간 거 아니냐구. 그러한 생각을 입 밖에 내지 않는 건 재민에 대한 신뢰 때문이었다. 재민이 형은 확실하니까. 나랑 다르게 말이다.

 

  물론 자리를 옮겨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어느덧 5월 마지막 날이다. 한낮에 접어드니 해도 슬슬 뜨거웠다. 그 아래에서 한참을 걷고 실망하고 걷고 실망하고 반복한 두 사람은 조금 지친 기색이 들었다. 버티고 버티다가 재민은 지성이 간절한 눈으로 벤치를 흘끗대는 걸 보고 당장 그쪽으로 향했다. 나뭇잎이 빽빽한 그늘 밑에 먼저 지성을 앉히더니 자긴 안 앉고 맹하니 올려다보는 지성에게 저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형이 저기서 아이스크림 사 올게. 잠깐만 앉아 있어."

 

   "같이 가요."

 

   "뭘 굳이. 기다리고 있어 금방 올게."



 

  같이 가자며 몸을 들썩이는 지성을 눌러 앉힌 재민은 씩 웃으며 머리띠를 피해 지성의 머리를 쓰다듬고 등을 돌렸다.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속도로 멀어지는 등짝을, 아니 뒤통수에 달랑이는 토끼 귀를 멍하니 바라보던 지성은 재민이 아주 멀어지고 나서야 흐트러진 제 머리를 정리했다. 머리띠는 벗어서 목에 아무렇게나 걸었다. 저 형은 이런 거에 정말 익숙해 보인다니까.

 

  지나가는 사람 구경, 떠다니는 노란 연기 구경 하던 지성은 가족들과 우르르 몰려 지나가던 꼬마 아이가 뭔가를 툭 떨어트리는 걸 목격했다. 바로 알아채고 주웠다면 좋았을 텐데, 떨어트린 줄도 모르고 해맑게 웃으면서 아빠 손 잡고 앞으로 앞으로 걸어간다. 잠깐 상황을 살피다 점점 멀어지기만 하는 아이에 벌떡 일어난 지성은 빠르게 그쪽으로 다가가 쪼그리고 앉았다. 메고 있던 작은 가방에 달려있던 것 같은 조그만 인형이었다. 산 지 얼마 안 된 티가 폴폴 나는 놀이공원 마스코트 인형. 얼른 갖다줘야겠다 하며 손에 쥔 지성은, 앞에 지는 그림자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주인이 다시 돌아온 건가?



 

   "내 꺼야."



 

  눈이 마주치자마자 단호하게 말하는 아이에 지성은 어리둥절한 얼굴을 대놓고 했다. 얼른 달라는 듯이 손을 뻗고 있는 아이는, 좀 전에 지성이 본 아이가 아니었다. 걘 여자애였는데 얜 남자애. 정확히 보지는 못 했지만 입은 옷도 다른 것 같고… 혹시 가족이 대신 온 걸까 싶어 아이의 어깨 너머를 살폈으나 둘의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지성은 다시 아이를 응시했다.



 

   "빨리 줘. 내 꺼야."

 

   "…너꺼 맞아?"

 

   "맞다니까!"

 

   "앗, ……."



 

  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지성이 고민하고 있자 아예 들고 있던 걸 뺏어간다. 순식간에 빈손이 된 지성은 되려 도둑 취급 하는 양 저를 팩 째려보는 아이에 머쓱하게 입술을 우물거렸다. …미안. 튀어 나간 두 글자는 날이 서 있지 않았다. 아직도 미심쩍긴 했지만 일단 사과는 해야 할 것 같았다.



 

   "지성아! 거기서 뭐 해?"

 

   "어? 아니, …"



 

  그때 원래 앉아 있던 벤치 쪽에서 재민이 저를 불렀다. 두 손에 콘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들고서. 어벙벙 고개 돌린 지성은 이르려고, 아니, 상황을 설명하려고 했다.

 

  눈앞은 텅 비어 있었다. 아이도, 인형도 없이. 당황한 지성이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아이의 옷자락 하나도 눈에 띄지 않았다.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다. 귀신에 홀리면 이런 기분인 건가? 물론 그건 지성이 느낄 일 없는 종류의 것인지라 지성은 잠시 소름 돋아하고 금세 털고 일어났다. 가족이 데리고 가기라도 했나 보지. 거기 뭐가 있어? 의아한 듯이 쳐다보는 재민에게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

 

  마지막 한 꺼풀 남았던 의혹은 역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듯한 재민의 태도에 깔끔하게 벗겨졌다. 재민과 함께 벤치에 앉은 지성은 아이스크림을 맛있게 먹었다. 지성이 목에 걸어놨던 햄스터 귀 머리띠를 본 재민이 참지 않고 당장에 도로 씌워버린 것이나, 지성의 아이스크림이 빠르게 녹아 손을 찐득하게 만들어서 그걸 재민이 물티슈로 손수 닦아준 일 정도를 빼면 그 휴식 시간은 순조롭고 좋았다.

 

  그 외에는… 순조롭지 않았다. 아이스크림의 콘 부분까지 와작와작 씹어먹고 다시 놀이공원을 뱅뱅 돌기 시작했는데 아무리 걷고 물어도 목걸이에 대한 단서가 나오지 않았다. 중간중간 한 번씩 포토 스팟에 서서 사진을 찍고 조경을 구경하는 것으로 지치지 않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했지만, 해가 뉘엿뉘엿 지자 맥이 탁 풀려 버렸다.

 

  벤치에 늘어진 지성은 멍하니 허공을 응시했다. 이젠 사람 구경, 노란색 구경 하는 것도 질렸다. 눈을 깜빡 거리다가, 하품을 크게 하고 기지개도 켠다. 쭈우욱 팔을 뻗어 늘이니 그래도 조금 몸이 풀리는 것 같은 기분. 문득 고개를 돌리니 재민은 옆에 앉아 진지하게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멀뚱히 바라보던 지성은 물었다.



 

   "뭘 그렇게 봐요?"

 

   "이거. 꽤 괜찮은 것 같아서."



 

  여전히 액정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 재민은 사리는 법 없이 지성에게 제 핸드폰을 내밀어 보고 있던 것을 공유해주었다. 이게 뭐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던 지성의 표정이 점점 떫어진다.



 

   "형 장난하는 거 아니죠?"

 

   "아니지. 지성아 이래봬도 이런 게 꽤 잘 맞그든."

 

   "……."



 

  아 골아파. 지성은 방금 속으로 심한 말 하나를 삼켰다. (이런 거나 쓰니까 사짜같아 보이는 거 아니냐구요!) 말 한다고 재민이 충격 받거나 핸드폰을 치우진 않을 테니까.

 

  재민이 보고 있던 건 고스트 레이더 어플…이었다. 일반인도 아니고 이 사람이 이러니 진심 개황당한 거다. 고개 들어서 눈 뜨면 다 보이잖아. 특히나 형은 또렷하게 보이잖아. 심지어 저거 맞는 것도 아니었다─당연하겠지만─. 지성의 눈에 띄는 노란 연기들은 하나도 표시되지 않고 있는 걸. 망망대해에 표류하는 배처럼 점 하나가 삐삐 돌아다니고 있을 뿐이다. 그 방향을 쳐다봐도 물론 연기는 없고. 들여다보면 들여다볼수록 이 형이 이걸 진지하게 보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왠지 열 받아서 두 손으로 머리통 쥐는 제스처를 하려던 지성은 제 손이 깜찍한 햄스터 귀 머리띠에 방해를 받자 순간 울컥했다. 그래서 그랬다.



 

   "형 그냥, 솔직히 그른 것 같으니까 그냥 남은 시간 동안 놀다가 가요."

 

   "그래도 의뢴데,"

 

   "아! 의뢰 거절하는 거 하루이틀이에요? 그리구 이건 무작정 거절한 것도 아니고 할 만큼 했는데 안 된 거잖아요. 솔직히 애초에 진짜 말이 안 되는 거였어 이건."



 

  포기하자는 지성의 말에 재민은 척 보기에도 망설이는 모양이었지만 이내 어플을 끄고 핸드폰을 집어넣었다. 그래, 그게 낫겠다. 이렇게 쉽게 마음을 바꾼 이유가 지성은 궁금했지만 굳이 묻지 않았다. 형도 귀찮아 졌거나, 아님… 내가 그만 하자니까 그런 거겠지. 가늠하는 건 간단했다.

 

  이번에는 지성이 주도해서 재민을 이끌었다. 주로 회전목마나, 붕붕 라이딩 대충 이런 이름을 가진 유아용 놀이기구였으나 재민은 군말 않고 옆에 탔다. 자꾸 주위를 둘러보며 다른 데에 신경을 쓰는 것 같다가도 조금 지나니 허접한 레벨의 놀이기구가 무섭다는 듯이 소리를 지르며 지성에게 안기고 난리인 것에 지성은 짱나면서도 안심했다. 점점 신나서 다른 아기 놀이기구도 섭렵하기 위해 이리저리 발을 옮겼다.



 

   "근데 지성아, 이제 형 타고 싶은 거 하나만 타도 될까?"



 

  그 순순했던 태도들이 이걸 위한 빌드업이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던 거지.

 

  거인의 찻잔에서 빙글빙글 돌다 나온 직후였던가. 재민이 방긋 웃으며 묻는 것에 즐겁게 휘청이는 스텝을 밟고 있던 지성은 의심 하나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무서운 놀이기구도 잘 타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지만 제게 무리한 걸 요구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어느 정도 있었고 아까 젤 심각했던 롤러코스터를 이미 돌파했기 때문에 은근 자신감이 생겨 있었다.



 

   "형, 저 일 그만둘래요."

 

   "으응, 뭐라구?"

 

   "저 일 그만둔다구요. 지금까지 감사했습니다."

 

   "안 들려 지송앙."



 

  뻔뻔하게 못 들은 척 하길래 에라 모르겠다 지성은 튀려고 했다. 근데 다리에 힘 주자마자 뱀 같은 팔이 스르륵 등을 미끄러지더니 허리를 감아 안는다. 꼼짝할 수 없게 재민에게 달라붙은 행색이 된 지성은 몇 번 몸을 비틀어 보다가 볼을 마구마구 부풀렸다. 쨉도 안 될 힘 차이였다.



 

   "타고 싶은 거 탄다면서요 이건 타는 게 아니잖아요!"

 

   "아웅 볼따구 봐 화난 햄찌같네~"



 

  부풀린 대로 재민에게 꼬집혔다. 하지마세여, 놓으세여! 재차 몸부림 쳐 봤자인 건 당연했다. 지성은 그렇게 호러 맨션 대기줄에 섰다.

 

  그래도 다른 사람들이랑 같이 들어가면 그나마 낫지 않을까 다급하게 주위를 둘러봤는데 친절하게 쓰인 안내문에 2인 1조라 못 박아 적혀 있었다. 그렇다면 형이 혼자 공포 체험을 하든 말든 나는 도망쳐야겠다 싶었으나 치밀한 재민은 지성을 줄 안쪽에 밀어 넣고 아까처럼 허리를 꼭 감싸 안고 있었다. 그러니 코너에 몰린 지성이 시도한 것은 회유였다.



 

   "형, 형형. 이런 걸 우리가 할 필요가 있을까요? 어차피 그냥 다 보이는데 굳이 가짜를."

 

   "그러면 지성아 우리가 이걸 무서워 할 이유가 있을까? 가짜인 거 다 아는데 뭐가 무서워."

 

   "……."



 

  대차게 실패한 것으로 모자라서 이쪽이 좀 설득되기까지 했다. 그렇긴 한데. 그 말이 맞는데. 말을 잃고 입을 쓱 닫은 지성은 원망의 눈으로 재민을 흘겼으나 웅 뽀뽀해달라구? 재민이 멋대로 묻자 것도 얼른 접었다. 들으라는 듯이 한숨을 폭폭 내쉬고, 그럼에도 달라지는 게 없자 잔뜩 시무룩하게 땅만 본다. 줄이 짧아지며 재민이 발 옮기는 대로 같이 딸려갔다.



 

   "형 근데 나 그만둔다고 한 거 쫌 진심인데."

 

   "지성이 분명 일 년은 한다고 그랬는데. 그래서 형은 학교까지 자퇴하고 사무실 차렸는데 지성이가 그만두면 형은…"

 

   "아 알았어요, 그냥 해본 말이에요."



 

  가슴에 묻어놨던 퇴사도 영영 실패. 되는 일이 하나도 없네! 그렇지만 재민이 저를 따라 개노잼 놀이기구를 몇 개나 재밌게 타줬다는 게 스멀스멀 생각이 나서 더 말 않기로 했다. 그래 정말 다 가짜일 뿐이니까. 설령 진짜 뭔가가 끼어 있어도 형이 있으니까 괜찮을 거야. 정 안 되면 눈 감고 형만 잡고 따라가기로 했다.

 

  정 안 되겠군. 지성은 태어난 이래 가장 빠른 판단력을 발휘했다. 캐스트에게 설명 듣고 짐 맡기고 어둠 속으로 등 떠밀린 순간부터 눈을 꾹 감고 재민에게 붙었다. 형 저 못 하겠는데 나갈 수는 없으니까 눈 감고 있을게요 형이 나 책임지고 데리고 나가줘야돼요 혹시라도 장난으로 놓거나 놓치거나 그러면 안 돼요 그러면 나 죽어요 나 진짜, 진짜 일 그만둘 거예요 형이고 뭐고. 무섭다면서 말은 종알종알 많이도 하는 것에 재민은 흐흐 음흉해 보이는 웃음을 흘렸다. 졸라 귀여워서 그런 건데 그러자 또 찔려서 바락한다. 장난 칠 생각도 하지 마요 진짜! 안 돼요! 재민은 벅차오르는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지성의 볼에 제 볼을 꾹 누를 만큼 안아 버렸다.



 

   "알겠어용. 형이 절대 지성이 안 놓지. 형 믿지?"

 

   "……."



 

  그 스킨십이 진짜 마음에 안 들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따스한 마찰은 지성의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 주었다. 선뜻 지성이 재민의 손을 꼭 깍지 껴 잡았다. 재민은 감격에 젖은 얼굴로 기뻐했다. 한참을 그렇게 난리를 치다 드디어 한 걸음을 뗐다.

 

  정말이지 지성은 재민에게 모든 걸 위임하고 따르는 중이었다. 아무리 비명 소리가 들려도, 기계가 철컥철컥 하는 소리가 들리고 몸에 뭐가 스쳐도 실눈조차 뜨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을 신중하게 내딛고 있었다. 오바해서 말하자면 제 생명을 내맡긴 것과도 같았다. 재민은 그 나름의 막중한 역할에 걸맞는 인재였다. 여기에 왜 들어온 건지 모르겠을 정도로 재민은 호러 맨션 내의 장치가 큰 소리와 함께 자기들을 덮칠 때도 뭔가 발을 걸거나 벽에서 튀어나와도 감흥 없어 하며 조용했다. 덕분에 지성은 크게 놀랄 일이 없었다. 한 박자 늦게 움찔 하고 …뭔데요? 뭐였어요? 슬쩍 묻는 게 전부였고 그마저도 재민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답해주는 것에 동요하지 않을 수 있었다.

 

  게다가 재민이 손도 꽉 잡고 손 잡은 팔끼리 스칠 만큼 가까이 붙어서 걷길래 지성은 한 치의 의심 없이 걷고 있었는데, 갈수록 무언가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전혀 즐기는 것 같지도 않은 재민이 여길 왜 들어왔느냐 하는 것을 차치하고도 이상했다.



 

   "형 아직도 많이 남았어요…?"

 

   "그런 것 같네."



 

  아무리 걷고 걸어도 바깥으로 나간다는 낌새가 없었다. 체감 30분은 너끈하게 채웠는데 그럼 못 해도 현실 시간 15분은 될 거고, 캐스트가 언급했던 이용 시간은 고작 10분이었다. 그런데도 아직 이 안을 돌고 있다니. 천천히 걷고는 있다지만 그에 비해서도 시간이 늘어지고 있다. 이젠 음산하게 깔아놓은 음악과 기계들에서 나는 효과음들에 소름은 커녕 진절머리가 날 지경이었다.

 

  사실 재민이 형은 진작 나갔고 나는 귀신한테 홀려서 여기 갇힌 거 아니야? 들어오는 시각적인 정보가 없으니 깜깜함 속에서 자기만의 생각만 데굴데굴 굴려 보는 지성은 여기까지 갔다. 분명 축축해진 손 꽉 맞잡고 온기 나누고 있는 재민에게 말 거는 것이 무서워 진 게 그때였다.



 

   "아."

 

   "……."

 

   "찾았다."



 

  재민이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린 것도 그때.

 

  지나치게 차분한 재민의 목소리에 순간 등골이 섬찟했던 지성이었으나 나가는 곳을 찾았구나! 하는 희망에 부풀어 멋대로 마음을 놓아버리고 말았다. 재민에게 아무것도 확인하지 않은 것은 실수였다. 지성은 역시나 재민이 이끄는 대로 착실히 발을 옮겼고 곧 쾅! 하고 아프게 어딘가에 부딪히고 말았다. 악, 비명까지 작게 지르고서 반사적으로 눈을 번쩍 떴다. 형 저 부딪혔는데요, 울상으로 돌아본다. 그 와중에 재민이 고의로 그랬을 거라곤 생각조차 안 한 반응이었다.



 

   "지성아. 지금부터는 진짜 형 손 꼭 잡고 있어야 돼. 알았지?"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예요?"



 

  지성을 보고 있지 않은 눈이 잔뜩 가라앉아 있다. 이런 데서 저런 눈을 하고 이런 순간에 저런 의미심장한 말이라니. …진짜 공포 영화 한 장면 같잖아. 무슨 소리냐고 겨우 용기 내 물었건만 재민은 묵묵부답으로 주위를 살피기나 한다. 이제 지성은 정말 울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시 눈을 감을 수도 없고 대체 이 망할 귀신의 집은 끝이 어딘 거야, 생각하기 무섭게 또다시 이상한 낌새를 알아채고 말았다. 이 놈의 감은 쓸데없이 이럴 때만 좋아서!

 

  그러니까 확실히 벽 같은 것에 쾅 부딪혔는데 눈앞에도 옆에도 그럴 만한 게 없었다. 앞은 뻥 뚫린 길이었고 옆 또한 벽에 닿을 수 없게 온갖 소품들이 늘어져 있었다. 대체 뭐야? 그러다 문득 등 뒤가 쎄한 기분에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벽이 거기에 있었다. 분명히 앞으로 앞으로 걸어 왔는데 등 뒤가 벽이었다. 거기에 걸린 커다란 거울에는 저희가 비치지 않았다. 찰나에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일이 어떻게 된 것이든 간에, 원래 있던 곳과 다른 곳에 왔다는 걸.



 

   "형 여기, 이상한 것 같은데,"

 

   "응. 알고 있어. 여기에 목걸이가 있을 거야."



 

  누가 듣는 것도 아닐 텐데 지성은 목소리를 죽여 물었고 재민은 이번에도 차분하게 대답했다. 그래서 지성의 공포가 고조됐다. 그건 또 무슨 소리예요. 내가 알아듣게 말해주면 안 돼요? 바들바들 떨며 애원하는 목소리에 재민은 짧게 고민했다. 시간이 많이 없는데…. 혼잣말을 중얼거리더니 손을 놓은 지성이 땀 찬 손으로 제 팔을 꼬옥 붙잡자 드디어 지성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지성아, 너가 아까 본 거 있잖아."

 

   "……."

 

   "그거 사람 아니었어."

 

   "……."



 

  재민의 굳은 얼굴에 왠지 싸늘한 공기가 휭 휘감고 지나가는 것 같다. 음산하고 또 음산한 분위기에 지성은 침을 꿀꺽 삼켰다.



 

   "저가 아까… 뭘 봤죠?"

 

   "……."



 

  와장창. 재민의 표정이 순식간에 황당해지며 눈썹이 꿈틀거린다. 그에 무서운 것도 잊고 지성은 민망해졌다. 아니, 형이 뭘 얘기하는지를… 모르겠는데요. 지성의 입장에서는 당연했다. 종일 본 게 너무 많았을 뿐더러 지성이 생각하기에 바로 짐작해볼 만큼 기억에 남은 일이 없었다.

 

  재민이 큰 숨을 내쉬는 게 마치 한숨 같아서 조금 더 쪼그라든다. 지성아 옆에 서지 말고 뒤에 서. 형 허리를 안아. 그러길래 지성은 제가 포기당한 줄 알았다. 그래서 평소라면 그냥 손 잡고 가면 안 돼요? 토 달았을 텐데 그러지도 않고 에바적인 자세를 순순히 취했다. 같은 오토바이에 탄 것도 아닌데 꼭 둘러안은 허리에 빈틈이랄 것 없이 두 몸이 밀착된다. 아 좀, 아래… 괜찮은가? 굉장히 신경 쓰이는 느낌에 지성은 자꾸 꿈지럭댔는데 재민은 일말의 신경조차 쓰지 않는 것 같았다.



 

   "팔 안 풀리게 조심하고, 가자."

 

   "넹…."



 

  펭귄 부부 같은 모양새로 뒤뚱이며 걷는데 몇 걸음 걷지도 않아놓고 재민이 불쑥 허리를 숙였다. 앗, 형 잠깐만요! 얼결에 보다 더 민망한 자세가 돼서 지성은 저도 모르게 재민의 허리를 놓고 말았다. 그래놓고 형이 놓지 말랬는데! 와 그치만 너무;; 사이에서 발 동동 거리는 지성에게 재민은 별 말 하지 않았다. 금세 허리를 세우고는 방금 주운 듯한 것을 지성에게 내밀었다. 민망해서 쩔쩔매던 지성은 벽에 달린 흐릿한 조명에 겨우 보이는 그것이 뭔지 한 눈에 알아채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어, 이거…"

 

   "이거 주워 간 남자애 주인 아니었잖아. 그 뒤로도 가는 데마다 보이던데, 계속 다른 애기들이 흘리는 거 훔치면서 돌아다니더라."

 

   "가는 데마다요?"



 

  그래서 그 개노잼 놀이기구들을 같이 타 줬나?! 지성은 마치 대단한 실마리가 풀린 것 같이 감탄한 얼굴로 재민을 쳐다봤으나 재민은 뒷머리를 벅벅 긁을 뿐이었다. 건 아니었는데. 똑같이 의뢰 포기하고 놀려고 지성이 따라 돌아다닌 게 맞는데 그놈이 자꾸 눈에 들어와서 못 본 척 할 수가 없었던 거였다. 그치만 지성이가 저를 좀 대단하게 봐 주는 것 같으니 쓱 입 닫기로 했다.



 

   "그러더니 주운 거를 다 들고 여기로 들어가잖아. 아마 바닥에 떨어진 건 다 챙겨가는 것 같은데 그러면 목걸이도 여기 있을 거 같아서."

 

   "근데 형, 걘 노란 연기가 아니었어요. 아니, 그냥 사람처럼 보였는데…."

 

   "흐음… 두 가지 가정이 있어 지성아."



 

  재민은 검지와 중지 두 개 손가락을 펼쳐 보였다. 그중 중지에 인형에 달린 키링 고리가 반지처럼 걸려 있다. 거기에 한 번 눈길을 줬다가 지성은 진지한 눈으로 재민과 눈을 맞췄다.



 

   "일 번. 걔가 사념이 특히나 강한 영이라서 네 눈에도 제 모습을 갖출 수 있었다, 이 번. 지성이가 나한테 영향을 받고 있다."

 

   "형한테서요…?"

 

   "영안이 점점 트이는 거지."

 

   "형이랑 같이 있어서요…??"

 

   "응. 뭐 근데 두 가지 다 가정일 뿐이고 일단 걔는 확실히 사람이 아니야."

 

   "잠깐만요. 그럴 수 있을 거 형은 알았어요?!"

 

   "엉?"

 

   "형이랑 같이 있으면 영안이 트인다는 거요! 그럴 줄 알았으면 나 안 했을 텐데!"

 

   "……."



 

  으아아악. 그러면 나도 이제 연기로 안 보고 그렇게, 사람처럼 다 보이는 거예요? 앞으로 쭉? 더? 진짜 싫어, 이럴 생각 없었는데 만약에 형 알고도 그런 거면 이건 진짜 취업 사기! 까지 말하고 지성의 입이 턱 막혔다. 재민은 지성의 입 막아놓고 반대 손을 휘적이며 말했다. 다 이해한다는 듯이 성의 없이 까닥이는 고개는 덤이었다.



 

   "지성아 심호흡. 진정해."

 

   "……."

 

   "형도 당연히 몰랐지. 지성이가 그렇다니까 혹시나 해서 해보는 말이고, 그런 게 아닐 수도 있어. 일단 지금은 목걸이 찾아서 나가는 걸 목표로 하자."

 

   "…느에."



 

  말랑한 살결에서 습윤한 손이 지익 떨어지며 지성은 눌린 소리로 대답했다. 썩 속 시원한 눈치는 아니었으나 저 말을 듣고 나니 빨리 여기서 벗어나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어준 뒤 다시 앞으로 훽 돈 재민은 뒤로 손을 뻗어 지성의 팔을 가져와 당겼다. 자연스레 제 앞으로 두르며 한 번 더 지성에게 언질했다. 아까처럼 놓으면 안 돼. 지성은 입술을 씰룩였지만 이번에도 네 하는 것 밖에 도리가 없었다. 얼결에 건네받은 인형을 재민의 귀에 걸어 놓으려다 씁. 소리에 제 주머니로 쑤셔 넣었다.

 

  인형이 떨어져 있던 것처럼 길을 따라 소소한 물건이 하나씩 하나씩 떨어져 있었다. 남사스러운 모양새로 쫓아가듯 움직이던 둘은 얼마나 더 걸었을까 재민이 우뚝 멈춰 섬과 함께 일시 정지했다. 눈을 감았다가 떴다가 정신 없던 지성은 슬금 눈을 뜨고 재민의 토끼 귀 옆으로 빼끔 눈을 내밀었다.



 

   "왜요?"

 

   "야."

 

   "……."



 

  옆구리까지 콕 찌르면서 물었는데 대답 대신 저 앞으로 떨어지는 정 없는 목소리에 지성은 머쓱하게 입술을 말아 문다. 근데 그 뒤로 정적이 흐르자 호기심이 치솟았다. 결국 지성은 고개를 더 빼서 아예 재민의 너머를 봤다.

 

  거기에는 아까 그 남자애가 서 있었다. 어색한 얼굴로 눈을 데굴 굴리는 게 당황한 것 같았다. 그 옆에는 금방이라도 튿어질 듯 낡아빠진 상자 몇 개가 어질러져 있었다. 모두 잡동사니들로 꽉 찬 채였다.



 

   "어쭈, 어린 게 불러도 대답도 안 하고."

 

   "너, 너야말로 남의 집에 멋대로 들어와 놓고! 당장 나가!"



 

  집? 지성은 갸웃했지만 여긴 귀신의 집이고 쟨 귀신이니… 맞는 말 같았다.



 

   "내가 찾는 게 있는데 말이야."

 

   "나한테 없어! 있어도 못 줘!"

 

   "오이. 아직 뭔지 말도 안 했는데."



 

  재민이 약간의 실랑이를 벌이는 동안 지성은 입을 헤 벌리고 그 아이를 살피고 있었다. 연기라고 할 건 장치에서 흘러나와 깔리는 드라이아이스가 전부였다. 인위적인 색을 띠는 것도 아니고 정말 재민이 아니었다면 사람이라고 알았을 법한 아이. 아무리 눈을 감았다 떠도 변함 없이 뚜렷한 형체였다. 지성은 체념했다. 드디어, 정말로 이런 날이 왔구나아아…. 믿고 싶지 않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쟤를 다 간 본 재민은 팔짱을 척 끼고 삐뚜름한 시선으로 응시하는 중이다. 아마 머릿속으로는 계산기를 두들기고 있는 중일 것이었다. 대치 상황에 점점 초조해 보이는 건 재민도 지성도 아닌 아이다. 이길 수 없을 건 뻔히 보이고, 그렇다고 소중한 보물들을 다 두고 도망칠 수도 없고. 

 

  곧 재민이 주머니를 뒤적여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어둠 속에서 환한 액정 불빛이 번쩍이자 지성은 저도 모르게 눈을 찌푸렸고 아이는 흠칫 한 걸음 뒤로 물러난다. 재민은 찡그린 얼굴로 조용히 갤러리에 들어가 아까 수많은 노란 연기들에게 보여줬던 그 사진을 켜서 아이를 향해 들어 보였다.



 

   "이 목걸이를 찾고 있거든."

 

   "…!"



 

  보려고 했든 아니든 눈에 그 사진을 담아버린 아이는 조금 미묘한 얼굴이었다. 본 적 없다고 빽 우기는 것도 아니고, 내 꺼라고 난리 피우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지성은 찝찝했다.



 

   "흠, 뭐. 그래. 여기까지 들어온 정성이 있으니까 한 번 찾아볼 수 있게는 해 줄게. 대신 난 안 도와줄 거야."



 

  거기다가 고분고분 자리를 비켜 박스존을 내주는 게 심히 의심스러웠다. 그러나 재민은 삼삼한 말─잘 생각했어─과 함께 저벅저벅 걸어 다가가는 게 전부였다. 달랑달랑 붙어 가면서 지성은 아이를 주시했다. 아까 낮에 기세 좋게 인형 뺏어가던 애는 어디 갔는지 힐끔힐끔 거리면서 지성의 눈치를 살피는 것도 같았다.

 

  상자 앞에 재민이 쭈그리려 앉자 지성이 파들짝 떨어져 나갔다. 그 와중에 착실한 본능에 멀리 거리를 벌리지는 않은 채였다. 재민은 지성을 제 옆으로 당겨 앉혔다. 아이가 있는 쪽에서 그나마 좀 떨어진 위치였다. 얼른 찾아서 나가자. 비슷하게 가라앉은 말투이나 지성에게만은 다정하게 재민이 말했다. 그에 지성은 실낱같은 희망 정도를 되찾은 기분이었다. 그래, 얼른 찾고 나가자. 잡동사니들이 무질서하게 처박힌 박스 안으로 손을 넣으려고 했다.



 

   "큭큭. 어차피 거기를 다 뒤져봤자 소용 없을 거야. 목걸이는 내 주머니 안에 있으니까!"

 

   "?"

 

   "?"



 

  심지어 목걸이를 주머니 안에서 꺼내 한 움큼에 잡고 높이 쳐드는 행동에 두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아이 쪽으로 돌아갔다. 곧이곧대로 자기가 다 내놓고 헉, 숨 집어삼키는 아이는 그제야 제가 저지른 사태를 파악한 것 같았다.



 

   "……."

 

   "……."

 

   "……."

 

   우당탕-



 

  재민이 먼저 달려들고 곧바로 지성이 뒤엉켰다. 으악! 안돼! 안돼! 소리 지르며 나름의 저항을 선보였지만 한껏 당황한 아이의 손에서 목걸이 빼앗기란 식은 죽 먹기보다 더 쉬웠다.

 

  순식간에 가장 소중히 여기던 걸 털린 아이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채 망연자실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난투(?)를 벌이느라 어딘가로 날아갔던 토끼 머리띠를 주우며 재민은 약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아이 쪽을 대충 흘기고 햄스터 머리띠가 흘러내려 와 목에 걸린 지성을 열심히 보듬어준다. 예쁘게 씌워주고, 흐트러진 머리도 정리해주고. 그러면서 아이한테 말했다.



 

   "대신에 다른 건 손 안 댈 테니까 너무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네."

 

   "내 목걸이이…"

 

   "우리 갈게? 안녕?"



 

  목적을 마쳤으니 더는 미련이 없는 재민을 얼른 지성의 손을 잡고 들어온 쪽으로 걸었다. 그렇지만 지성은 몇 걸음 가다가 슬쩍 재민의 손을 놓고 좀전의 자리로 돌아왔다. 멀뚱히 쳐다보는 재민의 시선을 받으며 주머니에 쑤셔 넣었던 인형을 꺼내 조심스레 아이의 다리 위에 얹어주었다.



 

   "이것도 너 줄게. 그럼 잘 있, 음, 안녕…!"



 

  깜찍하게 말 걸어놓고 혹시나 눈 마주칠세라 대답도 듣지 않고 후다닥 재민의 곁으로 돌아온다. 재민은 잘 키운 아이 보는 마냥 흐뭇하게 웃으며 지성의 볼을 꼬집었다. 으유웅. 울 천사햄찌. 부끄러운 듯 지성이 재민을 막 막 잡아 끌었다.

 

  걸어온 길을 걸어서 다시 마주친 거울에 또 쾅! 부딪혀 현실로 돌아왔다. 이제는 잡귀를 연기가 아닌 형체로 볼 수도 있다고 지성은 주의하고 있었으나 어쩐지 아까보다 훨씬 무섭지 않았다. 눈도 감지 않고 재민에게 딱 붙지도 않고─이 지점에서 재민은 아쉬운 것 같았다─ 자박자박 발을 옮긴다. 마지막으로 조심스레 뒤돌아본 거울 안에 왠지 인형을 내려다보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비친 것 같기도 했다. 아무튼 지성은 드디어 바깥 공기를 쐴 수 있었다.

 

  시간은 고작 10분이 흘러 있었다.








 

  당일에는 피곤해서 호러 맨션에서 나오자마자 집에 돌아오기 바빴지만, 결과로 봤을 땐 놀라울 만큼 성공적으로 의뢰를 마쳤다.

 

  거울 반대편으로 넘어가 귀신 꼬마를 직접 마주치기까지 해서 목걸이를 가져온 지성은, 의뢰를 성공했다는 소식에 한달음에 달려와 목걸이를 손에 들고 감동의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는 의뢰자를 대면하고 나서야 은은하게 남아있던 오해(?)를 마저 풀었다. 진짜 제대로 된 의뢰였구나.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비로소 진정한 직업의식이 생긴 것도 같고, 아. 참고로 지성은 정말 영안이 더 열린 게 맞았다. 아침에 출근하다가 여느 때와 다름 없이 연기 몇 개 동동 떠다니는 길거리에서 사이사이 사람만큼 사람 같은 형체들을 많이 스쳤기 때문이다. 놀이공원에서 처음 그 아이를 마주했을 땐 아무런 자각이 없었기 때문에 몰랐지만 의식하고 나니 언뜻언뜻 구분이 갔다. 그리하여 오늘 지성은 출근하자마자 태평하게 인사하는 재민을 팡팡 때렸었다. 형 때문에! 형 때문에! 형 알고 있었죠! 물론 재민은 끝까지 모른 척 했다. 형은 진짜진짜 몰랐다니까안. 그리구 사장님이라고 불러야지~

 

  맞아도 욕 아닌 욕 먹어도 실실 웃기나 하는 재민은 정말 즐거워 보였다. 무조건 질 수 밖에 없는 승부였다. 쫄쫄 쫓아다니며 뭐라고 해 봤자라는 걸 몇 시간 정도 지나 깨달은 지성은 푸쉬시 김이 빠져서 소파에 널브러졌다. 이렇게 된 이상, 이대로 간다면 점점 더 영안이 열릴 거라는 걸 알아도 그만둘 수가 없었다. 여기서 일하면 봐도 재민과 같이 보고 재민이 지켜주고 도와줄 텐데 그만두면… 정말이지 혼자 맞서게 될 것이니까 말이다.

 

  그리고 이건 비밀인데 한 편으론 심장이 콩콩 뛰기도 했다. 이제야 쫌… 있어 보이는 자격을 갖춘 것 같았달까? 크게 하는 일 없이 재민을 따라다니기만 하는 것보다 더 구체적으로 도움이 되는 일도 할 수 있을 거고. 물론 재민에게 말하면 어떻게 일이 커질 지 모르기 때문에 함구하고 있는 감정이었다.

 

  새 의뢰 안 들어오나. 이것 역시 속으로만 하는 생각. 팔걸이에 머리 대고 드러누운 채 낡은 천장 멍하니 올려다보다 버릇처럼 핸드폰을 들었다.



 

   '마류산 실종 사건, 오늘로 4건 째 신고'



 

  포털 사이트 앱을 켜자마자 눈에 박히는 헤드라인. 지성은 할 말을 잃고 그걸 응시했다. 하나가 아니었다. 같은 장소에 다른 사건을 담은 기사 제목이 주르륵 늘어져 있었다.

어느새 재민은 간만에 제 책상 앞에 앉아 있다. 지루한 듯한 얼굴로 턱을 괴고, 한 켠에 놓인 전화기를 바라보며. 뭔가를 세는 것처럼 손가락이 박자를 탄다. 갑자기.



 

   띠리리리리-



 

  허공에 터지듯이 울리는 소리에 지성은 멍하니 고개를 돌렸다. 놀란 얼굴이었는데 재민은 여전히 표정에 변화가 없다. 일정하고 느리게 울려대는 전화벨소리. 느리게 눈을 깜빡이며 재민은 지성을 응시한다.

 

  감이 좋은 편은 아니지만, 이건 분명 안 좋은 징조일 거라고. 지성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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