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냠
한 달이 지나기까지 D-31
지성은 나재민이 저를 사랑할 수 없다는 한 줄을 이해하기가 죽기보다 어려웠다. 이해할 수 없었고, 인정하는 순간 세상이 뒤집힐 것 같고 그랬다. 그렇다고 죽고 싶었다는 건 아닌데. 졸지에 사랑도 못 받고 꼼짝없이 죽게 생겼다. 그래, 불행 서사를 한 페이지 두 페이지 백 페이지로 적으면 뭐 해, 결국 한 줄로 요약되는데 말이다. 박지성은 곧 죽는다. 정말 세상이 일그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오전부터 먹구름이 잔뜩 꼈던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지성은 검은색 긴 우산을 폈다. 어떤 결과를 들을지는 몰라도, 오늘만큼은 비가 그를 나락으로 빠뜨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지성은 비에 대비해 우산을 들고 다니는 취미가 없었다.
“비를 맞으면, 세상이 나를 잠시 다른 공간으로 빼돌리는 것 같아. 그걸 막은 형이 조금 밉다, 나는.”
고백을 대차게 까인 날, 지성은 재민의 다정을 부정했다. 그동안 꼬박 우산을 챙기라고 잔소리하고, 결국 지성이 비에 젖지 않게 데리러 왔던 재민의 반응은 어땠더라. 사실 지성은 그날의 기억이 뿌옇게 남아있다. 울지는 않았지만, 그냥…. 두 손으로 눈을 박박 비비면서 형이 정말 밉다고 말했다. 그 자리에 있던 두 사람 모두 그 말이 거짓인 걸 알았다.
‘받아줄 수 없다’라고 말했다. ‘미안해’도, ‘좋아하는 사람 있어’도 아닌 ‘그럴 수 없다’. 지성은 재벌도 무엇도 아니었다. 재민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지성이 부모님을 여읜 지 오래되었다고 해도, 재민은 개의치 않고 그 옆에 남았다. 꿋꿋하게 지성이 일어나기를 도왔다. 그래놓고 받아줄 수 없다니, 지성은 콧방귀를 뀌었다. 자신만만했다. 한 달쯤 지나면 재민이 저를 받아줄 거로 생각했다. 오만이었다.
재민은 만나는 횟수를 줄였고, 챙겨주는 시선을 거두었다. 서서히. 지성은 제가 재민에 기민한 감각을 지녔다고 생각했지만, 그 역시 오만이었다. 그동안 재민이 해주던 것들을 지성이 하나씩 해나갈 때. 그러니까, 더는 지성에게 재민이 필요 없을 때 재민은 사라졌다. 지성은 제가 더 이상 재민의 손을 타지 않는다는 사실을 몰랐다.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지성에게 남은 것은,
독약을 탄 것마냥 진한 아메리카노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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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이 지나기까지 D-26
“그러니까, 네가 죽을병에 걸렸다고? 한 달 뒤에?”
정적이 맴도는 테이블 속에서 동혁이 입을 열었다. 동혁은 입만 뗐다 하면 분위기를 풀어내는 능력이 있었다. 지금은 되려 분위기를 한층 가라앉혔다. 지성은 굳은 형들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애꿎은 셔츠 자락만 괴롭혔다. 지성 옆에 앉은 제노가 슬그머니 지성 쪽으로 손을 옮겼다. 지성의 손에 따듯한 온기를 넘겨주는 제노는 벌벌 떨었다. 자세히 살피면 동혁도, 인준도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방금 들은 말을 해석하고자 노력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삼켜지지 않는 말이 있기 마련이다. 지성 또한 아직 제 말을 소화하지 못한 상태니까.
저녁 식사까지 함께하기로 한 모임은 약속 장소인 카페에서 파했다. 분위기 쇄신을 할 수도, 뭐 엉엉 울 수도 없는 판에 동혁이 자리를 뛰쳐나갔다. 지성과 제노, 인준은 물끄러미 동혁의 뒤꽁무니를 쳐다봤다. …… 서운해하지는 마. 알지, 동혁이 마음. 나지막한 인준의 목소리에 지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성은 제가 동혁의 투병 소식을 들어도 똑같았을 거라고, 아니 더 했을 거로 생각했다.
“저는 괜찮으니까… 재민이 형한테는 형들이 전해주세요. 형들은 저 모르게 연락하고 있을 거 다 알아요. 대답은 안 들을게요. 죽기 전에 봐요.”
위트랍시고 던진 말에 웃는 사람은 없었다. 지성은 쓴웃음을 짓고 일어섰다. 이렇게 말해도 재민의 소식을 건네는 사람은 없구나. 그제야 서운함이 밀려들었다. 그냥 아무도 몰래 죽어버릴 걸 그랬나. 지성은 테이크아웃 잔을 들었다. 커피 향이 코끝에 훅 맴돌았다. 나재민은 이딴 거나 나한테 남겨줘서 내가 죽기 직전에도 아메리카노를 마시는구나. 지성이 카페를 빠져나왔다.
죽기 직전의 사람이 갈 수 있는 곳은 거의 없었다. 지금껏 아르바이트하러 다니며 모은 돈을 병원비로 쓰기는 싫어서 지성은 입원을 거부했다. 의사는 이상한 낌새가 들면 바로 병원으로 오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을 생각은 없었다. 뚜렷한 계획이 있는 건 아니지만 남은 시간을 병원에 처박기에는 간지가 없다고 생각했다.
사실 지성은 두려웠다.
병원에 시간을 들여도 길어야 한 달밖에 늘리지 못 할까 봐. 병원에서 한 달 보내서 한 달 늘릴 바에야 그냥, 한 달을 알차게 살고 사라지기를 원했다. 입원도 하지 않는다는 소리를 들으면 기절할 형들이 훤했지만 정말이다.
펴본 적도 없는 담배가 말려 손을 쥐었다 폈다. 자취방 한쪽에 가만히 누워있자니 이럴 거면 의사들과 대화할 수 있는 병원에라도 갈까 싶었다. 생각만 하고 접었다. 병원에 가면 백발백중 입원을 권할 게 훤했다. 당연하지만…. 지성은 쭉쭉 아메리카노를 들이켰다. 담배랑 술을 멀리하고 어쩌고, 의사들의 권고사항에 커피는 없었다. 한두 잔의 카페인은 괜찮은 병인갑다. 한두 잔이 아니지만….
지성은 알게 된 지 채 몇 주도 안 된 제 병과 친해질 마음이 없었다. 정확한 이름도, 치료법도 모른 채 하루하루를 보냈다. 최소한의 양심으로 술은 멀리했다. 굳이 죽을 날을 당기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아메리카노도 좋지는 않을 걸 알았다. 지성이 나재민 석 자를 곱씹었다. 개-새끼. 시원하게 욕을 뱉어도 속에 응어리진 마음은 풀리지 않았다. 모든 걸 할 줄 알지만,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나재민, 나재민, 나재민…. 부른다고 올 리가 없는 사람을 괜히 불렀다.
띵-
지성이 휴대전화를 들었다. 연락 올 사람이 없어서 충전도 해놓지 않았는데, 누군가 싶었다. 배터리 잔량 20퍼센트, 충전하세요. 그 밑에,
나재민
[지성아, 통화돼? 가능할 때 먼저 걸어줄래?]
나아,재민씨,발새끼
몇 번이나 욕을 곱씹다가 지성은 휴대전화를 충전기에 꽂았다. 구닥다리 휴대전화는 빠르게 방전되고 회복되었다. 10분만 기다려도 50퍼센트를 찍을 게 뻔했다. 그때까지만 기다리자. 그때까지만…. 다시 휴대전화가 울렸다. 또 나재민이었다.
나재민
[부담스러워도 연락해 줘. 부탁이야.]
이씨발…. 평소에 쓰지도 않는 욕이 터져 나왔다. 진짜 뭐 하는 놈이야? 갑자기 화가 나다가도 훅 가라앉았다. 형들은 결국 나재민이랑 연락하고 있었구나. 아메리카노를 다시금 빨아들였다. 정적의 카페에서 사 온 아메리카노가 바닥을 보였다. 지성은 옷을 갈아입었다. 커피를 사러 나갈 생각이었다. 나재민이 사라진 후 지성의 일상 속에는 언제나 커피가 존재했다. 재민이 곁에 있을 때는 입에도 대지 않았던 커피를 광적으로 달고 살았다. 지성아, 너 그러다가 일찍 죽어…. 예전에 제노가 했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어쨌든 일찍 죽게 생겼으니 웃겼다.
잘 지냈어?
재민의 첫 마디는 생각보다 시시했다. 뭐야, 모르고 전화했어? 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잘 지냈냐는 물음에 대답하지 못하니 건강을 물어봤다. 애당초 지성이 대답하지 않을 거라는 예상을 한 듯. 내가 없으면 잘 지낼 리가 없지, 뭐 그런 착각일 수도 있었다. 사실 맞긴 하다만…. 지성은 그 어떤 물음에도 답하지 못했다. 재민은 그런 지성을 기다리다가 기어코 집으로 찾아가겠다고 말했다. 지성은 별말 안 했다. 말린다고 안 올 사람도 아니었다. 그 대신 집 밖으로 나갔다. 커피를 사려는 목적을 가장한 도피였다.
집에 돌아오니 재민이 와 있었다. 지성이 들어오자 재민은 현관 앞으로 나왔다. 마치 재민이 집 주인 같았다. 차분한 눈, 그 어떠한 동요도 없는 눈. 지성은 잠시 제가 사랑했던 눈을 쳐다보다가 재민을 지나쳐 집 안으로 들어갔다. 커피 두 잔을 랩핑해 냉장고 안에 넣고, 나머지 한 잔에 빨대를 꽂았다. 커피를 들이켜자 여전히 적응 안 되는 맛이 미각을 자극했다. 지성이 인상을 찌푸리는 순간까지 재민은 눈에 담았다.
“언제까지 숨길 생각이었어?”
그제야 지성이 재민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언제까지, 숨길, 생각이었어. 어절 별로 곰곰이 생각하다가 지성은 웃었다. 피식, 피식. 재민의 물음을 비웃기라도 하듯 웃었다. 언제까지긴요. 뒤질 때까지 숨길 셈이었죠. 근데 알자마자 말씀드려서 아쉬웠어요. 지성이 비꼬아도 재민은 끄떡없었다. 나한테 연락할 수도 있었잖아.
“형이 마지막 문자에 답이 없길래, 차단한 줄 알았죠. 누가 차단한 사람한테 다시 말을 걸어요. 형, 정신이 있으면 문자함에 들어가서 똑똑히 봐요. 제가 얼마나 혼자서 많은 문자를 보냈는지.”
지성은 제가 화를 내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놀라면서도 입은 술술 화를 뱉었다. 내색은 없었지만, 재민은 꽤 놀란 모습이었다. 그리고 방긋 웃었다. 웃으면서, 눈에서 눈물이 주룩 흘렀다. 그러니까, 재민이 울었다.
재민이 진정하기까지 수십 분의 시간이 걸렸다. 들썩이며 울다가 기어코 대성통곡하는 모양새에 지성은 휴지를 빼앗고 손수건을 들려줬다. 재민은 아기 브랜드 로고가 그려진 순면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고, 코도 풀었다. 지성은 멀뚱히 재민을 바라보았다. 울었다고 해서, 분위기가 풀렸다고 해서 재민과의 거리가 좁혀진 건 아니었다. 그냥… 운 거지. 지성은 더 이상 재민을 믿을 수 없어, 이것마저도 연막작전으로만 느껴졌다.
네가, 왜 죽어?
날 세우지 않고, 이성을 차리지 않고 재민이 건넨 한 마디는 지성 역시 울렸다. 그 누구도 대답할 수 없는 질문에 두 사람은 대화의 갈피를 잃었다. 재민은 지성을 품에 안고 토닥였다. 형은 달라. 다른 형들이랑, 달라. 왜 자꾸 손을 타게 만들어…, 울음에 잡아먹힌 말이어도 똑똑히 들렸다. 그러게, 왜 그럴까. 내가. 재민은 지성을 한껏 끌어안았다. 박지성 냄새에, 커피 향이 뒤섞였다. 재민은 인상을 찌푸렸다. 이전에는 맡지 못한 향을 기민하게 알아챘다. 달갑지 않았다.
꼭 제가 사라진 걸 커피로 풀어낸 것 같아서 기분이 더러웠다. 왜 더러운 건지 모르지만, 더러웠다. 그러나 재민은 다시 숨을 들이켰다. 이 냄새라도 기억해야 할 듯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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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이 지나기까지 D-18
재민은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 왜 사라졌는지, 어디에서 뭘 하고 지냈는지 하나도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어디선가 캐리어를 끌고 들어와 지성의 집에 얹혀살았다. 출처도 알 수 없는 짐을 지성은 받아들였다. 백 번 물어봐도 대답 없을 사람에게 따져 묻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하루하루 나약해지는 몸과 반비례하게 ‘연인 같은 행동’은 늘어갔다. 재민은 마치 지성의 연인처럼 굴었다. 아침을 꼬박 해먹이고, 몸서리치는 지성에게 가벼운 뽀뽀를 해주고. 웹서핑을 하다가 즐거운 것을 발견하면 지성에게 들이밀며 데이트 신청을 걸었다. 지성은 점점 몸을 일으키기 버거웠지만 재민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재민은 기민하게 지성을 살피다가 영화를 틀었다. 잔잔한 고전 영화를 틀면 고개를 꾸벅이다가 잠들 지성을 알았다. 요즘 들어 부쩍 악몽 꾸는 횟수가 늘었지만, 영화를 보다가 잔 날만큼은 소리 하나 없이 잠에 빠졌다. 재민은 가끔 그 정적이 무서웠다.
무섭다고 해서 지성을 악몽으로 밀어 넣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지성이 힘겨운 표정을 지으면 재민은 꼬박 영화를 틀어주었다.
가끔은 집 밖으로 나갔다. 지성은 커피를 금지당했다. 아니, 보리차처럼 연한 커피만을 허락받았다. 커피를 사러 가는 길과, 가끔의 드라이브로 지성의 영역이 좁아졌다. 지성은 꿉꿉한 기분이 들어도 숨기는 법을 익혔다. 자신의 기분 하나에 안절부절못하는 재민을 보고 싶지 않았다. 재민이 더는 죄책감 느끼지 않기를 빌었다. 생각해보니 순애보였다. 씨발같은 순애보. 지성은 욕도 늘었다.
잠시 졸다 일어난 지성이 재민을 불렀다. 형, 형….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던 재민이 곧바로 지성을 쳐다봤다. 일어났어? 왜, 어디 이상해? 지성은 고개를 저었다. 이미 해가 진 듯 커튼 밖이 어두컴컴했다. 우리, 바다로 갈까. 아무 바다. 재민은 군말 없이 지성을 일으켜 세웠다. 가벼운 가디건을 입히고, 헝클어진 머리를 빗겨줬다. 잠시만 기다려. 재민은 저 역시 간단히 옷을 갈아입고 주방으로 향했다.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고소한 수프 냄새가 퍼졌다. 지성은 실없이 웃었다.
그리 멀리 달리지 않았지만, 도시와는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지성은 재민이 이것저것 챙기는 동안 먼저 차를 나섰다. 모래사장 앞에는 곳곳에 벤치가 있었다. 아무 벤치에 주저앉은 지성은 멍하니 바닷가를 바라보았다. 그 옆에 재민이 조용히 다가왔다. 잠깐 사이에 뭘 그리 준비한 건지, 보온병이며 담요가 한가득하였다.
“형, 이사 왔어? 오 분 만에 뭐 이리 많이 싼 거야.”
“…… 오랜만이잖아. 들떠서 그래, 들떠서.”
지성은 별말 않고 고개를 돌렸다. 달이 비치는 바다에서 나재민으로. 재민은 자연스럽게 지성과 눈을 맞췄다. 형은 나를 언제부터 쳐다보고 있었어? 지성의 물음을 끝으로 두 사람 사이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지성은 굳이 채근하지 않았다. 언제부터 쳐다보았든 더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재민의 눈에 자신이 담겨있다는 사실 하나가 그렇게 소중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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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이 지나기까지 D-13
세 사람 중 제노가 가장 먼저 연락해왔다. 지성은 재민을 옆에 끼고 연락을 이어 나갔다. 동혁이가 많이 미안해 해. 다시 보고 싶어. 지성아, 언제 시간 돼. 지금 나재민 옆이야? 따발총처럼 이어지는 말에 재민이 휴대전화를 빼앗았다. 닥치고 지성이네 집으로 와. 아무 때나 와도 되니까, 올 때는 나한테 연락해.
그 말을 한지 정확히 네 시간 뒤에 모두가 찾아왔다. 동혁은 죄지은 듯 고개를 푹 숙인 채로 들어왔다. 동혁이 형, 이리 와요. 동혁이 주춤거리며 다가가자 지성이 그에게 푹 안겼다. 동혁은 못 말린다는 듯 허, 촤, 하며 웃었지만, 저를 껴안는 지성의 손에 맥아리가 없어서, 더욱 과장되게 웃었다. 지성이가 나를 너무 좋아하네. 나재민 어떡하냐?
간만에 패스트푸드를 잔뜩 시켜두고 먹었다. 먹다가 조는 지성을 모르는 체하고 네 사람은 왁자지껄 떠들었다. 안 그러냐, 지성아? 한 번씩 잠을 깨우면 지성은 몽롱한 정신으로 대답했다. 네, 네, 맞아요…. 지성이 잠들수록 네 사람의 목소리는 커졌다. 지성이 배를 채우고 재민의 옆에 기대었을 때 일순간 잦아들었다. 형 나 왜 이렇게 졸리냐…. 그 말을 신호탄으로 네 사람은 작은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래서 -, 너는 - 건데.”
“뭘?”
“지성이. 저 - 둘 거야?”
지성은 반수면 상태였다. 인준의 목소리가 들릴 듯, 말 듯. 잠을 깨고 싶었기만 쉽지 않았다. 제 이름이 들렸는데, 듣고 싶은데. 의식이 점점 흐려졌다. 재민의 팔이 허리를 단단하게 받쳐줘 지성은 조금 편하게 잠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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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는 영화가 제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지성은 갑자기 잠들었고 갑자기 일어나서 고통을 호소했다. 재민은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았다. 형 나 어떡해요. 지성은 감정을 숨길 줄 모르는 어린아이처럼 굴었다. 그런 재민은 그런 지성에게 진한 커피를 허락했다. 열흘도 채 남지 않은 시간에서, 더는 수를 세기도 무의미해 그만두었다.
지성아, 형 기억해야 해.
어느 순간부터 재민은 지성에게 말했다. 형, 꼭 기억해야 해. 처음에는 장난같이 받아들이던 지성은 이제 울 듯 굴었다. 울지 말라고 재민이 급하게 다독여도 소용없었다. 결국 몇 방울의 눈물이라도 흘려야 감정이 멎었다.
지성이 울 거라는 걸 이미 아는 재민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하는 걸 멈추지 않았다. 매일매일 확인받았다. 형, 잊으면 안 돼. 재민이 절박해질수록 지성은 힘겨워졌다. 더는 버틸 수 없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상한 직감이 드는 날, 지성은 유독 잠에서 깨지 못하는 재민을 거듭 흔들었다. 온 힘을 다 끌어올려 재민을 깨웠다. 아침에 몇 모금 마셨던 아메리카노가 역류했다. 재민이 비몽사몽 한 정신으로 지성의 이마를 짚을 때, 지성은 휘청거리며 쓰러졌다. 지성아, 지성아. 지성아?
지성아.
재민이 대답 없는 지성에게 입을 맞췄다. 거지 같은 순애보. 지성의 입에서는 더럽게도 쓴 아메리카노의 향이 풍겼다. 재민은 그렇게 지성을 끌어안았다. 곧, 지성을 만나러 갈 시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