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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좀비가 나타난 지 벌써 몇 주째. 한 곳에서 버티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재민과 지성은 식량이 떨어지자마자 주인도 모르는 차에 올랐다. 대충 키가 꽂혀있는 차 문을 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나오는 좀비 대가리를 후렸다. 재민의 행동이었다. 큰 소리가 나자마자 방향을 트는 좀비들에 둘의 행동이 빨라진다. 자연스럽게 재민이 운전석에 타고 지성이 조수석 문을 닫자마자 차는 출발했다. 꽤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좀비를 가볍게 제친다. 아래로 무언가 밟히는 느낌이 났으나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질긴 목숨을 부여잡고 창문에 달라붙은 좀비를 떼어내기 위해 재민이 핸들을 꺾는다.
"형, 저 토할 거 같아요."
지성이 손잡이를 꽉 쥐곤 재민을 바라본다. 세게 밟은 엑셀에 좀비들은 더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왜 이러지? 알 턱이 없었다. 재민과 지성이 알고 있는 지식이라곤 좀비는 사람을 물어뜯는다. 물어뜯기면 좀비가 된다. 그 두 개밖에 없었으니까. 재민은 그냥 더 발에 힘을 줬다. 아예 따라을 수 없도록. 저 뒤로 좀비 떼가 뒤엉켜 쌓이는 걸 본다. 지성은 그제야 손잡이를 놓았다.
서월의 끝을 알리는 표지판이 지나간다. 이젠 지긋지긋한 공간에서 빠져나온다. 재민과 지성이 있던 지역, 서월은 더 버틸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지성의 긴 손가락이 손잡이 대신 라디오 버튼을 꾹 누른다. 될까 했던 걱정이 무색하게도 선명한 소리가 들린다. 비명소리를 제외하고 처음 듣는 타인의 목소리였다.
'각 지역의 생존자는 최대한 높은 곳에 올라가서 하늘을 향해 빛을 쏘아주시길 바랍니다. 현재 생존자 확인이 어려운 상태이며 정부는 생존자 발견 시 즉각 헬기를 보내 생존자를 구조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지성이 헛웃음을 터트린다. 높은 곳에 올라가서 빛을 하늘로 향해 쏠 수 있는 여유 있는 상황에 살아남았을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서월 지역 생존자는 현재 0명으로 확인되었으며….'
이번엔 재민의 웃음이었다. 목숨 걸고 겨우 빠져나온 곳이 당장 서월이다. 애초에 확인 같은 걸 할 수가 없는 상황이라는 걸 다 알았지만 헛웃음이 나왔다. 뭐라도 정보를 얻을까 싶어 틀었던 라디오는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절망스러운 현실을 확인이라도 시켜주는 듯했다.
"우리 죽은 사람 됐네."
현재라곤 하지만 이미 며칠이나 되었을 녹음본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절망적인 숫자만 늘어두는 가운데 차는 깜깜한 터널 속으로 진입한다. 터널 내부의 조명들이 모두 꺼진 상태였다. 빛이 하나도 없어 라이트를 켜려는 재민의 손이 방황한다. 터널 안이 비로 젖었을 리도 없는데 차가 자꾸 미끄러졌다. 탁, 하고 라이트가 켜지자마자 재민은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지성아 내가 잘못 보고 있는 거 아니지?"
좀비 떼가 덩그러니 놓여있는 차를 향해 저 멀리서 뛰어들고 있었다. 예상도 못 한 일이었다. 뭐야? 지성이 놀라서 소리쳤다. 원래 저렇게 빨랐나? 급정거 덕에 안전벨트를 꽉 쥐고 있던 지성이 재민을 바라본다. 순간 둘 다 느꼈다.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사실을.
'좀비는 큰 소리에... 치직-. 위험할 때엔…. 시각은 없지만 빛의 방향을 구분할 수-'
잠깐 멈췄던 라디오가 치직거리며 다시 작동한다. 이제야 쓸만한 정보를 뱉고 있는데 터널에 의해 자꾸만 끊겼다. 더듬더듬 들려오는 내용은 그랬다. 좀비는 큰 소리에 반응한다. 제대로 들리지는 않았으나 브레이크 밟는 소리에 움직임이 빨라진 걸로 봐서 그랬다. 그리고 빛의 방향을 구분한다. 라이트를 따라 좀비들의 몸이 일제히 차로 향한다. 굳이 검증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지성이 정리되지 않은 숨을 내뱉었다. 딱 봐도 셀 수 없는 수였다. 차로 밀어붙일 수 있을까. 확실치 않았다. 살기 위한 통로에서 완전히 갇혀버린다.
쿵-
순간 큰 소리와 함께 운전석 창문으로 좀비 몇 마리가 달라붙는다. 비상구 쪽에 숨어있던 좀비가 빛을 향해 달려오다 그대로 차에 박혀버렸다. 진짜 되는 일이 없네. 재민이 입술을 세게 물었다. 울리는 터널 안에서 좀비들의 기괴한 소리들에 지성의 비명이 묻힌다. 달려오던 좀비들의 속도는 더 빨라졌다. 망설일 시간 따위는 없었다. 어떻게든 해야 했다. 도통 머리가 굴러가질 않는다. 불안에 떠는 지성이 재민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형, 우리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