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𝟗𝟏.𝟏𝐌𝐇𝐳

#1

 삑.


  카드 찍히는 소리가 나고 빨간 색으로 버스 요금이 지불 되었음을 알리는 숫자가 떴다. 천 몇백 몇십 원. 뒤에 붙은 자잘한 숫자는 늘 가물했다. 버릇처럼 그 숫자에 눈을 두었던 재민은 숫자가 사라짐과 동시에 고개를 돌리고 발을 옮겼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고 매일같이 일어나는 우연이었다.

  버스 기사가 틀어둔 라디오가 크지 않는 음량으로 울리는 버스 안은 한산했다. 줄지어 있는 일 인용 좌석은 다 차 있어서 이 인용 좌석에 앉아야 했지만. 드문드문 열린 창으로 아침의 선선한 바람이 불어 들어왔고 점심의 따스한 햇살이 내려 앉았다. 그럴 시간대였다. 평일 오전 열 시 반. 학생이면 학교에, 직장인이면 직장에 매여 있을 시간. 전국적으로 통용되는 그 사이클에서 재민은 종종 이렇게 예외인 편이었다. 남들이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 일상생활을 시작하고 있을 지금 재민은 밤을 새운 뒤 퇴근 중이었다. 그래서인지 창가 자리에 앉아 놓고도 여유를 즐기지 못하고 지끈대는 머리에 관자놀이나 꾹꾹 누르고 있었다. 두통약을 챙기는 걸 깜빡 잊었다.

  주파수가 몇인지도 알 수 없는 라디오 채널에서는 중년의 여성과 남성이 제보로 들어온 누군가의 일화를 실감 나게 연기하는 중이었다. 대사 사이로 방청객들의 웃음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컨디션이 좋았다면 귀를 기울였을 수도 있을 그걸 한 귀로 흘리며 재민은 가방을 뒤적였다. 이어폰을 내가 안 챙겼나. 내릴 정류장이 금방이긴 했지만 오늘은 좀 필요해서. 좋아하는 노래가 필요한 기분이었다. 다행히 이어폰은 가방에서 손에 잡혔고 재민은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어플에 들어가서 이전에 재생되다 멈춰 있는 음악을 틀었다. 아마도, 출근할 때 들었던 노래였다.

 

   삐- 삐- 삐-

 

  시작 하자마자 멈춰 버린 노래. 재민은 미간을 찌푸리고 화면에 뜬 팝업 문자를 읽었다. 긴급 재난 알림. 서월시. 바이러스 발생. 파악 불가. 글자를 마주하자 다시 지끈대는 머리로는 키워드 몇 개만 겨우 읽혔다. 무슨 소리야. 짜증스럽게 고개를 들면 다들 핸드폰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긴급 속보입니다. 긴급 상황 발생에 따라 송출되던 정규 방송을 중단합니다. 노래가 멈춘 이어폰 너머에서 들리는 낯선 소리에 재민은 멍하니 이어폰을 뺐다. 익살스럽던 두 사람의 목소리 대신 경직된 뉴스가 흘러 나왔다.

  신호가 파란 불임에도 버스가 멈춰 서 있었다. 웅성대는 승객들은 창문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사고라도 났나. 휩쓸리듯 눈을 바깥으로 돌린 재민은 두 눈을 의심했다.

  사람이 사람을 물고 있었다. 뜯겨 나가는 살점에 피가 터졌고 비명보다 더 끔찍한 육성이 울렸다.

  그 사태를 피하려는 차들이 서로의 통행을 방해하며 얽혔다. 클락션 소리에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버스 뒷문이 열렸다. 더 못 가요, 다 내리세요! 버스 기사가 외치면 얼굴이 파랗게 질린 사람들이 허겁지겁 내렸다.

  느린 몸짓으로 몸을 일으킨 재민은 현기증이 일어 비틀댔다. 옆에 선 봉을 붙잡았다. 고개를 털어내다 뭔갈 발견하고 응시했다. 재민은 마지막 승객이 아니었다.

  캡모자를 푹 눌러 쓰고 거기에 후드 모자까지 뒤집어쓴 사람 하나가 저 뒷자리에 커다란 백팩을 끌어안고 미동도 없이 웅크려 있었다. 재민은 잠시 서서 그를 응시했다. 줄 이어폰이 늘어져 있었다. 왜 도망치지 않는지, 훤히 알겠는 상황이었다. 아무렴 알 바는 아니었다.

 

   "…저기요."

 

  그렇지만.

  조금 전에 봤던 끔찍한 장면이 뇌리에 박혀 떠나지를 않았다. 여전히 귀에 처박히는 클락션 소리. 사이렌 소리. 찢어지는 육성.

  재민은 뒷문이 아닌 그 남자가 앉아 있는 좌석으로 향했다. 정신 없이 자고 있는 어깨를 흔들었다. 깊게 잠들어있던 것에 비해 싱겁게 고개를 들었다. 졸음이 잔뜩 붙은 눈으로 남자는 고개를 들었다. 얼굴에서 어린 티가 났다. 재민을 한 번 쳐다보고 바깥을 본다. 눈을 몇 번 깜빡. 재민을 다시 돌아본다.

 

   "저 지옥에 온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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